중국인은 화가 날수록 웃는다.

화를 내면으로 감추고 훗날을 기약한다.

그런 그들도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미엔쯔(체면)"를 손상당했다고 생각될 때다.

중국인들은 지금 화를 감추지 않는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중국인들의 체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엔쯔가 살아났다고 판단될 때까지 반미 시위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한 베이징(북경) 주민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 과정에서
표출된 미국의 "중국 때리기"에 대해 중국은 참을 만큼 참았다"고 말한다.

미국의 중국 인권문제 제기, 공공연한 대만 지원, 과도한 시장개방 요구
등도 웃어넘기고 참아왔다는 얘기다.

지금 중국 전역에서 봄동산 불꽃 타오르듯 번지고 있는 반미 시위는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중국의 많은 지식인과 언론들은 "미국의 보수 정치세력들이 중국을 냉전이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해 견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들이 WTO 가입협상을 전후해 반 중국 정서형성에 앞장섰다는 게 그들의
시각이다.

중국내에서는 이번 대사관 폭격이 "미국 일부 보수세력의 계획적인 오폭"
이라는 추론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지식인들은 "미국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중국뿐"이라는 점을
내세워 "미국의 패권주의에 중국이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 정부 역시 미국의 아시아지역 패권 장악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대사관 공격으로 미국-중국간 외교관계는 장기간 냉각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양측간 냉전이 한반도에 불똥을 튀길 거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대북정책 기조는 미국 중국 등 주변국가들을 끌어들인 다자간
안보체제다.

중국과 미국이 아시아에서 패권경쟁에 나선다면 이 체제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한반도 4자회담"이 꼬일 거라는 얘기다.

그렇잖아도 중국과 미국은 동북아시아 전역미사일체제(TMD)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TMD의 주요 대상은 한반도다.

미국 중국이 아시아지역에서 파워게임을 벌인다면 한반도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웃는 얼굴속에 숨겨진 중국의 속내가 어떻게 분출될지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한우덕 국제부 기자 woody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