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간선거가 끝났다.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으로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여러가지 예단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다는 것이 워싱턴의 분석이다.

오히려 르윈스키 사건을 공화당이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인상을 받은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표를 던진 것 같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아시아경제위기가 장기화되는 와중에서도 미국경제를 "건실하게" 지켜낸
것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낸 요인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중간선거에서 야당이 미국 정책결정의 중심체라고 할 수 있는
하원의 30석 정도를 추가 확보해 왔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선거 결과는 공화당의 패배 또는 민주당의 선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민주당은 예상을 뒤엎고 하원에서 의석을 늘렸다.

상원은 종전의석을 유지했다.

상.하원은 물론 주지사에서도 모두 밀릴 것이라던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화당은 상.하원에서 간신히 과반수를 지켜내 여소야대체제를 계속 끌어갈
수 있다는게 위안거리다.

결국 "민주당이 주도하는 행정부와 공화당이 이끄는 의회"라는 당초 정치적
기본구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대통령의 중도사임이나 탄핵은 원하지 않는다는 국민들의 인식이 투표로
확인된 결과라 할수 있다.

어차피 워싱턴쪽의 기본구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번 선거의 관심을 의회보다 주지사 선거쪽으로 돌려 놓는 결과를 빚었다.

크게 보아 이번 선거는 대망의 2000년 대선을 향해 뛰는 정치꿈나무들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전장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 가장 큰 단초는 부시 가문이 제공했다.

이번 선거에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두 아들이 텍사스와 플로리다에서
주지사에 당선된 것이다.

민주당 정맥의 한 뿌리를 이루고 있는 케네디가에 이어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가 새로운 "정치적 발전소(power house)"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인 가는
미국인들의 흥미 거리임에 틀림없다.

재선을 따낸 조지 부시 2세 텍사스 주지사는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을
상대할 수 있는 공화당의 잠재적후보로 꼽히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캘리포니아 뉴욕 텍사스등과 더불어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플로리다 주지사에 당선된 젭 부시 또한 부시가의 정치적 명망을 한차원
높여줄 수 있는 기대주로 꼽히게 됐다.

조지 부시 전대통령은 아예 부시 2세의 2000년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듯 텍사스 부지사에 출마한 릭 페리 후보 지원연설에 나서기도 했다.

아들이 대선에 뛰어들 경우 부시 2세의 뒤를 이어 공화당의 부지사가
텍사스를 맡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기도 하다.

불운의 연속선상에 있던 케네디가와는 달리 남부 특유의 기질을 가진
부시가의 정치적 결집력은 가히 놀라운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게 이곳의
평이기도 하다.

의회쪽의 결과와 상관없이 클린턴 정부의 레임덕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게 됐고 따라서 한반도 정책과 풍향계는 클린턴 행정부가 아니라
공화당의 의회에 의해 좌지우지되게 됐다.

한국정부가 클린턴 쪽보다 공화당 쪽의 의회외교에 보다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고 따라서 의회쪽에 이렇다할 접선채널이 부족한
우리로선 앞으로 상대적으로 힘겨운 외교를 펼쳐야 하는 형국을 맞게 됐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공화당의 대북 강경노선에 따라 적지
않은 시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를 통해 케네디가의 퇴장과 부시가의 등장을 보는 한국인들의
느낌은 남다르다.

독재와 군정, 그리고 3김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 2세의 투명
하고 자유분방한 성장이 보장돼 있는 미국의 정치는 분명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정치의 신진대사야말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활력소인지
모른다.

양봉진 < 워싱턴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