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사임은 국제금융시장이 혼란에서 안정으로 가는 전환점이 될
것인가.

그의 하야로 국제금융시장을 덮어온 "인도네시아 먹구름"은 일단 옅어졌다.

그렇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사임발표직후 아시아통화와 주가가 일제히 반등세로 돌아섰다가 하비비
신임대통령이 잔여 임기를 다 채우기로 했다는 소식으로 오름세가 꺾인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사임선언후 전날의 달러당 1만2천루피아대에서
1만루피아대로 급등했다.

하지만 하비비 신임대통령을 앞세워 수하르토가 막후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우려로 다시 1만9백루피아로 떨어졌다.

엔화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전날보다 1엔가량 오른 달러당 1백35.2엔까지 회복됐지만
하비비정권에 대한 불안감때문에 1백35.8엔으로 반락했다.

싱가포르 달러, 말레이시아 링기트, 홍콩달러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아시아 각국의 주가역시 이 흐름을 탔다.

전반적으로 오름세는 유지됐지만 인도네시아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상승세가 꺾이거나 상승폭이 둔화됐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하비비체제에서 인니국민들의 정치개혁요구가
지속돼 정국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수하르토 사임은 아시아금융시장의 혼란을 더욱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혹시 지난주 같은 유혈시위사태와 무정부상황이 온다면 몰라도 상황은
다소나마 호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의 탈출도 줄었다.

이와관련 일본 닛코증권의 투자분석가 켄트 로시스터는 "설사 국제자본이
당장 되돌아오지는 않는다 해도 더이상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장의
안정을 점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대한 서방세계의 투자심리가 회복되고 그에따라 최대
채권자인 일본금융기관들의 채권회수바람이 잠잠해지면 아시아금융시장이
더이상 격동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수하르토의 사임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제도 파탄지경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혈폭동사태같은 극도의 혼란이 수습됨으로써 국제통화기금(IMF)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계속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덕분이다.

수하르토 사임직전 금융지원을 중단키로 했던 IMF가 다시 지원에
나설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수하르토체제에서는 불가능했던 공기업의 민영화, 부실 금융기관정리등
보다 과감한 경제개혁이 가능하다는 근거에서다.

하비비체제가 제2의 수하르토정권이라고 평가절하되고는 있으나
하비비정부는 적어도 수하르토보다는 과감하게 경제개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하르토가 물러남으로써 경제개혁을 반대해온 수하르토일가와 인척들의
힘은 크게 줄어들었수 밖에 없다.

앞으로 인도네시아는 IMF와 미국의 정치경제적 지원을 받아 경기회복을
꾀할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실제로 일본과 미국등은 이날 곧바로 인도네시아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IMF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개혁조건을 일부
완화해 인니경제에 숨통을 터줄 가능성도 있다.

이제 수하르토사임으로 "인도네시아의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유예)"
이라는 폭발의 뇌관은 제거됐다.

향후 정국혼란지속이라는 불안요소가 남아있지만 모라토리엄 우려가
사라진 그 사실만으로도 아시아경제와 금융시장의 혼란은 어느정도
진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