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이냐 친위 쿠데타냐"

수하르토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결국 이 두가지로 좁혀지고
있다.

민심을 돌려보려는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의회마저 그에게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이제 인도네시아 내에서 아직 수하르토에 등을 돌리지 않은 세력은 "군과
경찰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의회는 수하르토의 당인 골카르당이 절대적인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수하르토의 뜻대로 움직여 왔다.

그런 의회가 이날 전격적인 "반역"의 기치를 올린 것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권력이동이 시작했다는 분석까지도 나돈다.

수하르토는 지난 15일 카이로 방문에서 급거 귀국할 때만해도 사태수습에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귀국하자마자 이번 폭동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유가인상을 철회한
것이라든지 "18일 개각"을 약속한 것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날 인도네시아의 상황은 수하르토의 이같은 태도가 민심을 읽지
못한 오판이었음을 입증했다.

학생들은 시위를 재개했고 특히 전직 각료와 퇴역장성들까지 여기에 가세해
반 수하르토세력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또 개각 약속도 "경제파국의 책임을 각료들에게 돌리기 위한 미봉책일 뿐"
(회교지도자 아미엔 라이스)이라는 식으로 평가절하됐다.

사태가 이쯤되자 인도네시아 의회도 더이상 수하르토 체제로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 그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는게 인도네시아 관측통들의 분석
이다.

하지만 군부의 입장이 변수로 등장했다.

위란토 국방장관겸 통합군사령관은 수하르토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대통령을 바꾸는 것보다는 경제개혁을 통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20일로 예정된 대규모 시위의 취소를 요구했다.

그러면 앞으로 인도네시아 정국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까.

그 가능성은 두가지로 예측되고 있다.

하나는 수하르토가 사임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경우 후임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하르모코는 이날 수하르토의 사임을 촉구하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 상황대로라면 인도네시아 헌법 8조에 따라 부통령이 잔여임기를
채우게 된다.

즉 현 부통령 하비비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하비비는 수하르토에 못지 않게 국민들로부터 불신당하고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관측통들은 하비비가 대통령직을 승계할 경우 더 큰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군부에 의한 친위 쿠데타 내지 정권교체다.

즉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수하르토를 다시 대통령으로 옹립하거나 아예
정권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다.

대부분의 관측통들으로 이런 시나리오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인도네시아에는 현 정권을 대체할 만한 민간 야당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대학의 아르비 사니트 교수(정치학)도 "당장은 정권을 인수할
민간인 지도자가 없다"고 단언하고 "군부가 과도체제의 일부가 돼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