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금융시장이 다시 혼란에 빠졌다.

통화는 폭락하고 주가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작년 하반기 아시아금융위기가 처음 발생했을 때와 거의 같은 상황이다.

외국투자자들이 발을 빼고 있는 상황도 당시와 유사하다.

아시아 전역이 제2의 환란으로 다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7일 동남아 금융시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자카르타 콸라룸푸르 싱가포르 등 주요 금융시장이 개장되자 마자 환율은
폭등하고 주가는 폭락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영국금융기관 IDEA의 환율분석가 니잠 이드리스는 "아시아
외환대란이 다시 시작됐다"고 거의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번 시장혼란의 진앙지는 물론 인도네시아다.

국제통화기금(IMF)과 합의한 대로 인도네시아정부가 지난 5일 연료비와
전기료 교통요금을 대폭 인상하자 시민들은 폭도로 변하고 시위는 유혈사태
로 번지고 있다.

그나마 일부 남아 있던 외국자본이 인도네시아를 탈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인도네시아에서의 외국자본 엑소더스는 이웃나라로 파급돼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금융시장들도 허물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순매도가 3백74억달러에 달했으며 환율도 급상승세
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지난 며칠간 국제 투기자본들이 수십억달러의 핫머니를
동남아시장에서 빼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와중에 올 하반기쯤부터는 중국 위앤화가 절하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중국중앙은행의 내부보고서까지 언론에 보도돼 아시아통화하락을
부채질했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환율은 안정과 불안의 분기점으로
여겨지던 수준을 일제히 돌파했다.

태풍의 영향권 밖으로 인식돼던 싱가포르 달러마저 하락저지선인 달러당
1.6싱가포르달러선을 넘어 한때 1.64까지 내려갔다.

증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상황이 나쁜긴 하지만 제2의 외환위기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금의 시장혼란은 작년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다.

그때는 외국인자금의 급격한 유출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이번엔 정치
사회적인 혼란이 기폭제라는 것이다.

앞으로 시위사태가 진정되면 시장 패닉상황도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아시아를 바라보는 외국투자자들의 시각이 냉담해진다면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나마 남아있던 자금마저 빼내간다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균형이
무너져 버린다는 얘기다.

최소한 지금의 상황이 호전되지 않은 채 장기화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며
최악의 경우는 당연히 제2의 환란이다.

그렇지 않아도 노사분규와 개혁지연에 대한 외국투자자들로부터 좋지않은
평가를 듣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이정훈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