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북경)주재 한 상사직원의 부인 C씨(45)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내용은 "달러를 인민폐로 바꿀 때 연락하면 공식환율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바꿔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C씨는 귀국선물을 사기위해 준비해뒀던 1천달러를 건네줬더니
1달러당 인민폐의 공식환율 8.2663위앤(17일)보다 0.4위앤(한화 60원 상당)
이상 높은 8.7위앤으로 환전해 주었다.

가짜돈이 섞여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으나 공식환율보다
크게 높은 암시장 환율에 놀랐다.

전문암달러상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베이징과 상하이(상해) 톈진(천진) 등 중국 대도시의 외국인 밀집지역에
몰려있는 암달러상들은 이따금씩 찾아오던 일부 외국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조건으로 달러를 교환해 줄테니 찾아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5천달러 이상의 "거액"을 바꿀 때는 일반 암달러 환율(8.4~8.8위앤)
보다 더 나은 환율로 환전해주겠다고 공언한다.

달러화를 선호하는 분위기는 외국기업에 취업한 청소년들에게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청소년들은 예전엔 달러화로 받은 급여를 인민폐로 환전해 가지고
있었으나 지난달말 이후부터는 꼭 필요한 돈을 제외하고는 달러화로 갖고
있다.

이같은 중국내 달러화 사재기현상은 12월들어서면서 심해졌다는게 중국
금융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전문가들은 수년동안 인민폐가 완만하게 평가절상되고 있는 속에서
유독 암시장에서만 평가절하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달러화 사재기의 원인은 "달러를 갖고 있으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 사이에 자유저축예금 이자율(1.71%)이나 정기예금 이자율(1년
5.67%, 3개월 2.88%)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것이 달러화라는
인식이 급속히 퍼지고 있는 것이다.

왜일까.

우선 올 하반기 이후 한국 태국 필리핀 등이 외환위기에 빠져 해당 국가의
달러화에 대한 환율이 크게 평가절하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중국인
들이 인접국가의 사정에 비춰 자국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
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이 발생하면서 중국 암시장의 환율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바침한다.

또 일부 국유기업의 달러화 매집도 암달러시장 환율을 부추기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금융당국이 인민폐(외화보유액 1천5백억달러)의 평가절상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외환보유제한을 완화하자 일부 국유기업들이 이런 틈을 노려
달러화 사재기에 가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판이라 중국 금융당국의 태도까지 달러화사재기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룽지(주용기) 국무원부총리가 "인민폐의 달러화에 대한 가치를 평가절하
시킬 필요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고 선언한 것이 "뭔가 조치를 취하기
위한 것"으로 왜곡되고 있을 정도이다.

현재까지 중국내의 암달러상 숫자나 거래금액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가
집계된 적은 없다.

그러나 금융전문가들은 대도시의 외국인 밀집지역이나 대학가 및 관광지
마다 한 개소에 3~10여명의 암달러상이 활동하고 있는 점에 미뤄볼 때 3천
여명의 암달상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중국 대도시에서 달러화에 대한 인민폐의 암달러환율은 지난달초
8.2900위앤(공식환율 8.2820위앤)수준에 머물렀으나 17일엔 장소에따라
낮게는 8.4위앤에서 높게는 9.0위앤(공식 환율 8.2663위앤)으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 베이징=김영근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