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를 팝니다"

최근 스위스가 대대적인 세일에 돌입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세일이 아니다.

뿌리깊게 박혀있는 관광대국의 고정 이미지를 씻고 외국인 투자천국으로
새롭게 태어나기위해 스위스가 "국가세일"에 나선 것.

비록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그 열의만큼은 전혀 뒤지지 않고 있다.

2년전 선보인 "로케이션 스위스(Location Switzerland)"라는 투자유치
캠페인을 내세워 온 나라가 외국기업모시기붐으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그동안 국가경제의 기둥 역할을 해온 관광업과 금융서비스업으로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4만1천달러로 전혀 아쉬울 것이 없어 보였던 스위스가
이처럼 외국인 투자유치에 발벗고 나선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17일 스위스 로잔공과대학에서 열린 한.스위스 과학기술협력위원회
제2차회의에 참석한 크리스티앙 쉐넌버거 스위스 외무부 경제.금융담당
부과장은 "스위스는 더이상 알프스와 초콜릿의 나라로만 남아있어서는
안된다"며 "다른 나라들이 관광자원개발에 미처 눈을 돌리지 못했을
당시에는 스위스의 관광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젠 아니다"고
단언했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경쟁시대에 살아남기위해서는 관광산업에만
목을 매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국민들사이에 높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주한 스위스대사관 경제참사관을 지내고 6개월전 본국에 돌아온 외무부의
쉐넌버거 부과장은 "현재 실업률이 5%대에 육박하는 등 경기침체의 기미마저
나타나고 있어 외국인투자유치를 통한 고용창출 등 경제살리기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독일 등 여타 유럽국가들의 두자릿수에 비하면 스위스가 겨우 5%의
실업률로 요란을 떠는 것이 다소 엄살처럼 보이지만 쉐넌버거 부과장의
견해는 달랐다.

지금까지 스위스는 1%대의 실업률로 완전고용을 자랑해온 터라 5%는 매우
높은 것이며 서둘러 외국기업유치 등 경제정책에 변화를 가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이틀 일정으로 열린 한.스위스 기술협력회의도 양국간 기술협력 및
인적교류를 활성화하자는게 그 취지이지만 따지고 보면 한국기업들의 대
스위스투자를 적극 유치하려는 스위스의 속셈이 짙게 깔려 있다.

이번 회의의 주최자인 바두 로잔공과대학 학장도 굳이 이를 부인하진
않았다.

바두 학장은 "스위스는 기업들의 R&D센터설립를 위한 최적지"라며 "로잔
공과대학같은 의약 정밀기계 정보통신관련 첨단기술과 우수 인력의 산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접근이 용이한게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산학간 협조체계가 잘 구축돼 있다는 점외에도 스위스에 투자해야
할 이유는 많다.

스위스 수도 베른에서 만난 토니 브라우클레 산업.노동 사무소(경제부산하
기관)소장은 "무엇보다 1~2시간이면 유럽의 어느곳에도 접근이 가능,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강점도 빼놓을 수 없는 투자매력이 될 것"이라
고 설명했다.

"로케이션스위스" 투자캠페인을 진두지휘해온 브라우클레 소장은 "임금이
다소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단순 비교에 의한 것이고 여타 복지비용
등이 독일의 절반수준에 불과한 것을 감안한다면 실질임금면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특히 생산성을 고려한다면 그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게 입증된다.

96년도 세계경쟁력연감에 따르면 스위스의 취업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
생산액은 8만3백달러에 달한다.

프랑스의 7만6백달러, 독일의 6만7천4백달러, 영국의 4만3천3백달러와
비교해도 단연 앞선다.

도로 공항 등 잘 정비된 인프라, 저렴한 금융비용, 낮은 세율 등은 외국
기업들을 유혹하는 주요 기본요소에 속한다.

다우 케미컬 지멘스 휴렛팩커드 IBM 모토로라 화이자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유럽의 본부나 R&D센터로 망설임없이 스위스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 베른(스위스) = 김수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