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의 금융 위기와 이로 인한 대폭적인 환율 절하가 미국
대기업들에 "감원 한파"를 일으키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코닥 리바이스 등 굵직한 미국 대기업들이 대대적인 "정리
해고" 계획을 발표하는 등 미국 경제계가 "아시아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 전문가드리은 대기업들이 이같은 감량 경영이 미국 경제가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시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
있다.

인프렐율이 3%대에 머물러 있고 10월현재 실업률은 24년만에 최저 수준인
4.7%로 완전 고용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돌연 감원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융전문기관인 파이낸셜이그제큐티브연구소가 지난달 중순 4백개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응답 기업의 3분의 2가 향후 1년내에
인력을 오히려 충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대기업들이 "종업원 학살"에 나선 이유는 자명하다.

아시아국가들이 경제 위기로 인해 상당수 미국 기업들이 "시장"을 상실하게
됐다는게 한 이유다.

게다가 환율 절하로 가격 경쟁력이 강화된 아시아 기업들이 마케팅공세로
국내 시장 "방어"도 이전같지 않게 됐다.

지난 11일 근래 최대 규모인 1만명의 감원 계획을 밝힌 이스트만코닥사와
6천4백명의 정리 방침을 선언한 리바이스사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회사는 아시아 판매 비중이 높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라이벌 기업들로부터 가격인하 공세에 시달려 왔다.

코닥이 전 직원의 10%이상을 잘라낼 수밖에 없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일본 후지필름의 엔화 절하에 힘입은 가격 인하 때문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리바이스도 중국과 동남아의 값싼 인력을 활용해 추격해온 미국내 경쟁
업체들에 등을 떼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미국 기업들의 다운사이징이 꼭 아시아 변수 때문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시카고의 이코노미스트인 존 챌린저는 "미국 기업들은 90년대 초의 대대적
인 다운사이징 붐 이후 6년 반동안 기록적인 경기 확장을 즐겨 왔다"며
"이제는 경기 확장기에 생겨난 거품을 중간 정리할 시기"라고 지적했다.

또 90년대 초의 감량 경영이 주로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단행됐을뿐 금융-
서비스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인원정리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도 지적된다.

최근 감원선풍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들은 바로 이런 기업들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대기업간 인수-합병(M&A)이 잇달고 있어 후속 인원정리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바야흐로 미국 기업계에 90년대 초와 같은 규모는 아닐지라도 을씨년스런
감원선풍이 줄이을 것으로 보는 또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같은 감원바람이 미국 경제 전체를 위해서는 꼭 나쁜 것 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조금씩 과열 기미를 보여온 미국 경제의 열기를 식히는 데는 어느 정도의
인원 정리가 "희생양"으로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앨런 그린스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중앙은행)의장은 미국 경제가
완전고용상태를 보임에 따라 기업들의 인력 구득난에 따른 비용상승 인플레
가 나타날 것임을 경고해 왔다.

일부 기업들의 대규모 인원감축은 이같은 그린스펀의 우려에 대해 "돌파구"
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