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슈렘프(53) 다임러벤츠 회장은 외모부터가 품격과 권위를 상징하는
벤츠와 꼭 닮아있다.

슈렘프회장을 만나면 누구나 "안경이 참 독특하군요"라는 말부터 꺼낸다.

그의 성격은 안경에 잘 집약돼 있다.

권위적인 직사각형의 안경은 일반인이라면 상당한 용기를 갖지 않고서는
착용하기 힘든 스타일이다.

슈렘프회장은 확실히 다혈질이다.

쿠바산 시가를 물고 한껏 폼을 잡는 것이나 전투기조종(실제 그는 면허를
취득했다)과 스포츠카인 페라리운전이 취미인 것만 봐도 금방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경영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그는 타협을 모르는 불도저이다.

권력투쟁에서는 냉혈인간을 보는 듯 하다.

지난해 그룹 주력 기업인 메르세데스 벤츠 헬무트 베르너회장과의 권력
투쟁을 지켜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점을 인정한다.

당시 베르너회장은 그룹회장 슈렘프에겐 유일한 경쟁자였다.

벤츠왕국의 영원한 대권을 노리던 슈렘프에게 베르너회장은 사실상 눈엣
가시일 뿐이었다.

즉각 공격에 나섰다.

무기는 그룹산하 전 계열사를 지주회사로 합병시킨다는 것.

이를통해 계열사의 회장 및 사장자리를 없애고 의사결정과정을 단순화
시키겠다는 게 슈렘프회장의 생각이었다.

결국 베르너회장은 올초 30여년간 몸담아오며 자신이 키워왔던 메르세데스
벤츠를 조용히 떠나야 했다.

이같은 저간의 사정에도 세간에선 슈렘프회장의 스타일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이유는 지나치게 점잖은 독일 기업스타일에서 다임러벤츠그룹을 그나마
세계 최고기업으로 우뚝 세운 장본인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지난 95년 슈렘프가 에트자르드 로이터 전회장의 뒤를 이어 다임러 벤츠
신임회장에 취임할 때만 해도 이그룹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다.

80년대말 무차별적인 확장정책의 부정적인 효과가 본격 나타나는
시점이었다.

항공 전자 소프트웨어 등으로의 덩치 늘리기가 90년대초들어 독일 국내
경기후퇴로 손실만 초래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80년대 말 인수한 항공기 메이커 포커사의 파산.

이 일로 벤츠는 95년 한해에만 40억달러의 손실을 내 사상 최대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슈렘프회장은 이에따라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맨 처음 메스를 가한 부분은 바로 그룹의 "덩치 줄이기".

전 계열사의 그룹 지주회사로의 합병이 대표적인 것으로 조직의 슬림화를
통한 효율성 제고가 목적이었다.

동시에 유래없는 대규모 인력감원(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우 95년 한햇동안
4천여명의 근로자가 해고됐다)도 단행됐다.

슈렘프회장의 개혁에는 흔히 미국식 경영방식이 녹아들어 있다고 한다.

이 지적은 확실히 맞다.

슈렘프 자신도 언젠가 한 기자회견에서 "잭 웰치회장(미 제너럴 일렉트릭)
의 경영방식을 벤치마킹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대표적인 게 "가치중심 경영"의 도입.

슈렘프는 취임하자마자 23개 계열사에 최소한 투하자본의 12%는 순익으로
올려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다.

이는 "모든 사업부문에서 최고를 지향하라"는 젝 웰치의 야망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회계에 어두운 독일기업들엔 새로운 충격이었다.

슈렘프의 개혁은 처음부터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3년연속 적자속에 허덕이던 그룹의 96년 매출액이 대폭 늘어나면서 처음
흑자(17억달러)로 반전됐다.

97년 슈렘프회장은 또다른 변신을 시도중이다.

이번에는 개혁보다 한단계 강도가 높은 "혁명"을 진행중이다.

이를두고 미국의 경영잡지 포천은 최근호에서 "슈렘프가 다임러 벤츠에
혁명의 불을 댕기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과거 개혁이 체질개선이라는 내부개혁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번 혁명은
세계 진출 가속화, 차종의 풀라인업을 통한 수익성 개선, 대중적인 이미지
강화 등 보다 공격적인 내용에 맞춰져 있다.

슈렘프회장이 이같은 혁명을 완수하고 그가 개인적으로 꿈꾸고 있는 벤츠
딜러로서의 평온한 말년을 맞이할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 정종태 기자 >

[[ 약력 ]]

<>1944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출생
<>1967년 다임 벤츠 입사
<>1984년 메르세데스 벤츠 남아공 지사장
<>1987년 다임러 벤츠 상용차부문 판매담당 중역
<>1989년 다임러 벤츠 에어로스페이스 사장겸 CEO
<>1995년 다임러 벤츠 회장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