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로포비아"(Billophobia).

마이크로소프트(MS)사 빌 게이츠회장의 "빌"과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의
합성어.

세계 컴퓨터업계를 주름잡는 경영인들이 빌과의 한판 대결에서 패했거나
협상술에 말려들었던 불쾌한 경험, 앞으로 유사한 일을 겪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에서 갖게 된 증후군을 일컫는 신조어다.

빌로포비아에 사로잡힌 경영인들은 빌에게 더이상 순수한 경쟁의식을 가질
수 없다.

빌에 대해 극단적인 거부감을 드러내며 그와 감정대결 양상을 전개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빌과 타협하는 것을 굴종으로 여기고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기꺼이
투쟁을 택한다.

스콧 맥닐리 선마이크로시스템스회장이 대표격이다.

그는 자사의 서버(중앙)컴퓨터에 MS의 "윈도NT" 소프트웨어를 절대 탑재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윈도NT를 탑재하면 자사 수익을 높일 수 있지만 로얄티지불로 빌의 배를
불려주기 싫다는 뜻이다.

그는 다른 경영인들과 연합,프로그래밍언어 자바를 기반으로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서고 있다.

타도대상은 물론 빌과 MS사다.

맥닐리 회장은 그러나 최근 빌로부터 한방 얻어맞았다.

MS가 자사의 윈도시스템에서만 작동하는 인터넷 검색소프트웨어 익스플로러
최신버전에 선사의 자바언어를 사용한 것.

맥닐리회장은 당초 자바언어를 전 시스템에 호환시켜 표준언어로 정착
시키기 위해 빌과 라이선스계약을 체결했었다.

맥닐리의 이런 기대를 빌이 배반한 것이다.

맥닐리회장이 계약당시 빌의 "노련한" 협상술에 말려들어 자바에 대한
독자적인 개선권(improvement right)을 승인함으로써 빌미를 준 결과다.

그는 결국 빌을 고소,법정투쟁에 나서게 됐다.

제임스 박스데일 네트스케이프 사장은 이에 대해 "빌의 독점야욕을 혐오
한다"고 맥닐리회장을 거들고 나섰다.

박스데일사장도 지난 95년 빌에게 불쾌한 경험을 겪었기 때문.

MS측과 기술공유협정을 체결키로 거의 합의했으나 막판에 빌이
네트스케이프사의 이사직을 요구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빌이 우리회사 기밀을 알아낸 뒤 파괴하려고 한 짓"이라고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실제로 빌은 과거 애플사로부터 매킨토시컴퓨터용 그래픽운영체계(OS)
사용권을 얻어낸후 이를 윈도버전에 응용, 애플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전력이
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회장도 맥닐리회장, 박스데일사장과 함께 "반빌 연대"에
나선 인물.

기존 PC의 절반이하 가격인 네트워크컴퓨터(NC)로 MS의 소프트웨어들을
무력화시킬 야심이다.

NC에 MS의 윈도프로그램을 배제하고 자바프로그램을 탑재한다는 전략이다.

이들을 연대시킨 동인은 바로 빌로포비아다.

이밖에 소프트웨어시장에서 빌에게 완패당했던 레이몬드 누르다 전 노벨
CEO와 델 요캄 볼란드 신임 CEO도 최근 빌을 반독점과 부당스카우트 혐의로
각각 고소하는 등 도전적자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애플사의 최고영업책임자(COO) 출신인 델 요캄은 "빌이 부당스카우트로
우리회사를 죽이려 하고 있다. 나는 애플시절부터 그를 잘 안다"고 주장했다.

이들 경영자는 극도의 거부감으로 사업상에서라도 "빌과의 동침"을 고려
하지 않는다.

"공룡" 빌은 동반자라도 방해가 될 경우 삼켜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정면 승부를 택한 것이다.

< 유재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