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희생양으로 삼은 클린턴 행정부의 "승부수"가 신통력을 발휘했다.

1일 오후 (한국시간 2일 새벽) 미국 무역대표부 (USTR)가 한국 자동차
시장에 대해 슈퍼 301조를 발동키로 결정한 직후, 상원 재무위원회에서는
행정부가 제출한 통상교섭 신속처리권한 (패스트 트랙)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클린턴 행정부는 패스트 트랙의 입법을 향한 첫 장애물을
넘어섰다.

상원 전체회의와 하원 운영위원회-전체회의 등에서의 인준이라는
고갯길들이 아직 남아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상원 재무위원회에서 통과된 법안의 대부분이 입법화돼
온 전례를 볼 때 미 행정부가 패스트 트랙으로 재무장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게 워싱턴 분석가들의 진단이다.

사실 지난달 클린턴 행정부가 "노동-환경과 관련이 있는 행정부의 대외
무역자유화 협정에 대해 의회는 내용을 일절 수정하지 않은 채 가부만을
결의할 수 있다"는 패스트 트랙안을 의회에 내놓았을 때만 해도 이 법안이
"빛"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물론 클린턴이 소속한 민주당에서조차 이
법안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양당의 반대 이유는 서로 달랐다.

공화당은 "부메랑 효과"를 우려해 반대했다.

노동과 환경분야를 명시해서 무역 자유화 협정을 체결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만큼 미국내 노동 및 환경정책도 강화될게 뻔하고, 이는 기업들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클린턴 입법안의 "약발"이 약하다는 상반되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보다 화끈하게" 노동 및 환경관련 조항을 법안에 명시해 미국내
노동자와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처럼 한결같이 클린턴의 반대편에 서있던 양당 의원들이 패스트 트랙에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현지 통상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첫째는 행정부가 상원 재무위 중진의원들과의 막후 흥정을 거쳐 법안
문귀를 "우선적으로 노동과 환경에 관한 협정에 적용한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바꿨다는 점이다.

양당의 입지를 다같이 살려주는 방향으로 타협하는데 성공한 셈이다.

둘째는 "한국 카드"를 절묘하게 써먹었다는 점이 꼽힌다.

상원 재무위원회에서의 난상 토의를 바로 앞둔 시점에서 한국 자동차
시장의 문호 확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슈퍼 301조를 발동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냈다는 얘기다.

의회에 대해 "행정부는 주요 해외시장을 열어제치기 위해 이만큼 애쓰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고,이것이 먹혀든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클린턴이 "미국을 명실상부한 세계 지도국으로 자리매김시키기 위해
불가결하다"고 호소하며 집권 2기를 맞은 자신의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패스트 트랙 권한이 완전하게 그의 손에 쥐어질 것인지, 그렇다면 그
시기가 언제될 것인지가 남은 관심사다.

메릴랜드대학의 무역사 전공학자인 데슬러 교수는 이와 관련, "공화-민주
양당이 타협의 구심점을 찾은 만큼 과거의 예로 볼 때 이르면 연내에 빛을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뉴욕 = 이학영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