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미국 보스턴의 맥월드 엑스포행사장.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무대중앙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제휴를 발표하는 순간 무대뒤 대형화면에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인
빌 게이츠의 모습이 나타났다.

잡스는 기조연설에서 "애플이 이기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패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게이츠도 애플이 최근 개발한 컴퓨터 운영체계인 "Mac OS8"을
치켜세우며 "오늘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화답했다.

두사람은 겉으론 "우의"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날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은 두사람의 속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날 행사장의 분위기를 취재한 한 컴퓨터전문지는 "스티브 잡스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가며 마이크로소프트와 맺은 제휴의 당위성을 설명했지만
그의 얼굴은 시종 굳어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이날 양사의 제휴를 놓고 많은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맞수
였던 애플도 이제 끝났구나"고 분석했다.

경영위기에 몰린 애플이 적수인 마이크로소프트에 두손들고 "도와달라"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잡스는 연설도중에도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말한다.

잡스에겐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제휴가 "적을 이기기 위해 적을 잠시 이용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빌 게이츠에게도 속셈은 따로 있었다.

"게이츠가 이날 보여준 모습은 마키아벨리안의 속성 그대로였다. 겉으론
애플의 백기사로 나섰지만 애플이 망할 경우 컴퓨터운영체계의 독점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것에 다름 아니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게이츠가 노리는 또다른 점은 애플이 갖고 있는 기술상의 장점을 이용,
새로운 강자로 부상중인 네트스케이프와 오라클을 쉽게 누를 수 있다는 것.

결국 두사람의 "동상이몽"으로 인해 멀지 않아 양사간의 우정이 또다른
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컴퓨터업계의 황제를 꿈꾸는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사실 두사람이 같은 무대에 함께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둘은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다.

게이츠가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면
잡스는 항상 그늘속에서 지내왔다.

잡스는 76년 애플을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도 "컴퓨터가 상업화되는 것은
자신의 철학에 반한다"는 자본주의 기업관과 동떨어진 신념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85년에는 자신이 고용한 사장에게 쫓겨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반면 게이츠는 명석한 두뇌만큼이나 경영에서도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모든 사업에 저돌적인 속성을 보여 최근에는 멀티미디어TV시장에 새롭게
뛰어드는 등 끝없는 영토확장을 노리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두사람간의 경쟁은 이번 제휴로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지 분석가들은 "그동안 그늘만 좋아하던 잡스가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드디어 전면에 나섰다. 이는 곧 라이벌인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잡스는 이번 제휴발표 직후 경영회복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개발중인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계인 "랩소디"를 차세대 핵심기술로
채택,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

이와함께 잡스는 지난 84년 애플의 전성기 당시 홍보를 맡았던 TBWA와
재계약, 대대적인 광고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잡스가 과연 애플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다소 방어적인 그의 속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잡스는 길버트 아멜리오 전회장 사임직후 회장직을 맡아달라는 이사회의
요청에 "가족의 행복을 버릴 수 없다. 애플은 나의 첫사랑일 뿐이다"며
고사하기도 했다.

더욱이 이사직으로 복귀 직전 애플주식의 대부분을 팔아치웠다는 데서
"애정" 자체를 문제삼는 사람도 있다.

잡스가 이번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제휴를 추진하며 경영의 전면에 나섰지만
그의 앞날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섞인 시각을 보내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어쨌든 뒤늦게 전면에 나서 애플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잡스와 애플을 적당히 이용하면서 컴퓨터업계의 왕으로 군림하려는
빌 게이츠 두사람의 행보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 정종태 기자 >

[ 약력 ]

* 빌 게이츠 <>55년 시애틀 출생
<>73년 하버드대 입학
<>74년 컴퓨터언어인 BASIC 개발
<>75년 하버드대 중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
<>81년 IBM과 SW개발 계약 체결
<>85년 ''MS 윈도'' 개발 시작
<>94년 MS직원인 멜린다 프렌치와 결혼
<>94~96년 세계 최고 갑부로 선정(포브스)

* 스티브 잡스 <>55년 캘리포니아 출생
<>72년 포클랜드시 리드대학 입학
<>74년 대학 중퇴, 인도행
<>76년 ''애플I''개발, 애플사 창립
<>85년 이사회에서 쫓겨남. 넥스트 설립
<>86년 애니메이션 전문업체 픽사 설립
<>97년2월 애플 자문역으로 복귀
<>97년8월 애플 이사로 선임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