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30주년을 맞은 아세안이 국제무대에서 유례없이 강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변세력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얀마 라오스를 회원국으로
맞이했다.

동남아 통화위기와 관련해서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며 비난의 톤을
높이고 있다.

"서방에 맞서는 아세안"의 이미지가 점점 농도를 더해가는 분위기다.

그 대표적 예가 이른바 소로스논쟁이다.

압둘라 아마드 말레이시아 외무장관은 28일 "소수의 부도덕한 외환거래업자
에 의해 수백만명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은 국제범죄의 극치이며 악랄한
파괴행위"라며 마하티르총리에 이어 다시 조지 소로스로 대표되는 서방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아세안 확대외무장관회담(PMC)에 참석한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을 직접
겨냥한 것이 분명하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참아 넘겼지만 보기
좋게 당한 꼴이 됐다.

아세안은 서방의 단골메뉴인 인권과 마약에 대해서는 "소귀로 경을 듣듯이"
받아 넘겼다.

미국이 "마약상인들이 경제.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미얀마의
인권과 마약문제를 건드리고 캐나다가 "아세안이 (미얀마에) 영향을 행사
해야 한다"고 거들었지만 이미 신규가입국이 된 미얀마의 내정에는 간섭할
수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새출발을 다짐하는 자리여야 할 아세안의 PMC가 "부도덕한 외환거래업자",
"마약상인"를 빌미로 설전이 오가는 장면을 연출했지만 아세안은 효과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물론 아세안의 반서방적으로 비쳐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 대표적 인물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총리는 당초 한국과 호주 아세안
국가들이 주축이 돼 추진했던 "아.태경제협력기구(APEC)에 미국이 들어오는
것은 당치도 않는다"며 미국의 가입을 최전선에서 반대했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이광요)도 기회있을 때마다 "아시아적 가치관"의 우월성
을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각각 제3세계의 맹주, 대미전쟁의 유일한
전승국으로 미국등 서방과 좋은 관계가 아니다.

이같은 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회원국까지 확대한 아세안이 앞으로도
"서방의 잣대"에 의해 자신들이 재단당하는 것에 강한 반발을 보일 수
있음을 짐작할 수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아세안이 정치적으로 반서방의 목소리를 내지만 경제적
으로는 당분간 서방지원을 걷어차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PMS회담에서도 아세안국가들은 "메콩강 유역개발과 AFTA(아세안자유
무역지대)의 진전을 위해 (서방의) 경제협력이 절실하다"고 경제적으로는
"작은" 목소리를 내야만 했다.

말레이시아가 미국을 비난하는 날 태국은 서방국이 주축이 된 국제통화기금
(IMF)에 손을 벌려야 했다.

결국 당분간 경제적으로는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반서방의 목소리를 내는 기구가 아세안의 모습이 될 것이란 관측이 강한
분위기다.

< 박재림 기자 >


[ "돈 크라이 포 미, 아세안" ]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은 28일 PMC만찬장에서 "돈 크라이 포 미,
아세안(아세안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이라는 노래로 불러 화제.

평소 진지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올브라이트는 미대표단과 함께
뮤지컬 "에비타"의 삽입곡인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를 개사한 이
노래를 열창.

"돈 크라이 포 미, 아세안/나는 항상 당신을 사랑해 왔어요/미얀마 군사
정부시절에도/캄보디아 훈 센시절에도"로 시작된 이 노래는 "어떤 나라는
나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고/어떤 나라에서 나는 가택연금 당할 위험이
있어요/그러나 나는 고백하건데/나는 아세안남성들이/가장 섹시하다고/말해
왔어요"라는 대목에서 폭소를 자아냈다고.

이 노래는 특히 국제 외환시장의 거물 소로스가 동남아시아 통화위기의
배후라는 주장등을 희화한 것이어서 동남아회원국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한 그녀의 회유책인 것으로 현지에서는 분석.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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