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함께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폐쇄적인 공산국가 쿠바.

이 나라에 요즘 시장경제의 싹이 트고 있다.

방향은 조심스럽고 점진적으로 자본주의 본질인 ''동기부여'' 시스템을
도입하는 쪽.

물론 철권통치자 카스트로가 직접 방향키를 쥔 상태의 개혁이다.

급격한 자본주의의 길을 걷다가 권력을 놓친 소련 등 옛 공산권의 ''혁명
동지''들을 지켜본 카스트로의 선택이다.

경제적 자유확대가 종종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는
이유(?)에서다.

개혁은 국영기업에서 시작되고 있다.

수천개의 비효율적인 국영기업들을 생산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선 보조금을 대폭 삭감했다.

93년 54억페소에 이르던 보조금은 지난해 14억페소(시장환율로 따지면 약
7천4백만달러)로 줄었다.

국영기업 관리들의 사고방식도 "시장지향적"으로 재교육시켰다.

부하직원들에게 비즈니스교육을 시킨 마르코스 포르탈 기초산업장관은
"이는 이념적인 변화"라며 "이들은 과거 무엇을 생산하든 생산자체에 만족
했으나 요즘은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말한다.

이런 세태변화를 반영, 하바나대학은 MBA(경영학석사)프로그램을 신설했다.

지난 2월 첫 졸업한 50명의 학생들은 8백명의 지원자중에서 선발됐었다.

이들중 3분의 2는 국영기업 관리자들이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국영기업들은 86년이후 처음으로 성장세를 나타냈다.

프란치스코 소베론 쿠바중앙은행총재는 이를 "매우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한다.

인센티브제도 확대되고 있다.

국영기업 근로자들은 생산실적이 탁월할 경우 옷같은 현물이나 미국달러화로
보너스를 받는다.

영국 우닐리버PLC사와 합작으로 변기를 생산하는 "수첼사"는 영업사원들이
사무직사원보다 임금을 3분의 1이상 더 받기도 한다.

자영업도 어느정도 허용된다.

국영기업 효율화과정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의식한 조치다.

물론 본격적인 개인사업까지는 허용되지 않는다.

농업생산성 증대를 위해 개인농업을 장려하지만 농지 소유는 아직 금지하는
것처럼.

이 정도 개혁만으로는 구조적 경제불안을 해소하기 힘들다.

그래서 생각한게 외국인 투자유치.

카스트로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캐나다 셰리트인터내셔널같은 회사는
쿠바 니켈과 코발트생산의 90%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외국인투자는 관광사업으로 벌어들인 달러와 함께 체제붕괴를 막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있다.

최근 쿠바수도인 하바나의 거리는 조금씩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식량을 구하기조차 힘들었던 90년대 초반보다 삶의 질이 꽤나 높아졌다.

시내엔 수십개의 레스토랑도 생겨났다.

가격이 자유롭게 책정되는 농산물시장에 가면 야채 콩 고기등이 풍부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경제가 구조적으로 호전되지는 못하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무역적자가 이를 말해준다.

달러를 벌어들이는 주요 상품인 설탕값은 떨어지는 반면 생필품수입가격은
자꾸만 올라가는 탓이다.

미국의 엠바고(무역금수조치)도 외국인투자를 막고 있다.

금융제재도 심각한 수준이다.

루이스 로드리게스 경제기획청장관은 "지난해 8%에 육박했던 성장이 올해는
자칫 4%선으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분석가들은 쿠바에도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체제이행국"의 경험을 보면 그렇다는 지적이다.

카스트로도 러시아나 중국의 지도자들처럼 신세력의 변화압력에 직면할
것이란 예상이다.

국영업체관리들은 정부의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더많은 자율성을 요구할
것이고 자영업자들도 이익 재투자 방안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카스트로는 경제회복을 원한다면 좋든 싫든 광범위한 시장개혁을 도입해야
한다.

아니면 고통스런 쇠퇴의 길만 있을 뿐이다.

<육동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