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폭탄이 떨어지는 레바논.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중동
지역의 동네북"이 되어 파괴와 테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이 불안정한 나라로 미국과 일본등 서방의 투자자금이 흘러들어가고 큰
사업을 꿈꾸는 국제 비즈니스맨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최고의 위험과 최고의 수익은 공존한다"고 믿는 사업가들이 레바논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피델리티 푸트남 스쿠더등 대형투자기관들이 레바논의 은행
주식들을 매집하고 있다.

레바논상업은행이 최근 발행한 4천만달러규모의 주식예탁증서(DR) 가운데
40%정도를 피델리티등 미국계 투자기관들이 선뜻 인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노무라증권도 레바논상업은행 DR를 대거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아우디뱅크에 따르면 최근 2년동안 레바논
으로 유입된 국제투자자금이 모두 1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주변 아랍국과 해외교포들로부터 온 것이고 나머지
5억달러정도는 피델리티 노무라같은 서방의 금융기관들이 투자한 것이라고
아우디뱅크측은 밝혔다.

레바논을 찾는 사업가들은 현재까진 레바논계 미국인들이 대부분으로 수도
베이루트를 중심으로 사업체를 확장하고 있다.

뉴욕에 살면서 대형금융기관인 J P 모건에 근무했던 나빌 사와비니는 지난
94년 사표를 던졌다.

그는 레바논에서 의료사업을 벌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재 뉴욕과
베이루트를 오가며 창업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사와비니는 중동의 갑부들이 최신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미국까지 간다는
사실을 제시하면서 의료수요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투자기관들에게 강조
하고 있다.

특히 레바논 해변의 날씨가 휴양하기에 매우 좋기때문에 회교도의사가
있는 첨단병원을 레바논 바닷가에 세우면 주변국의 회교도 갑부환자들을
대거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와비니는 현재 3천만달러이상의 투자자금을 끌어 모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레바논계 미국인인 바사라 나무르는 미국음식점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미국수도인 워싱턴에서 21개의 레스토랑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 요식
업계의 베테랑이다.

나무르의 레바논 레스토랑은 미국음식을 메뉴로 하면서도 베이루트 특유의
건축양식을 살리는 건물에 들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레바논에서 활동중인 국제비즈니스맨들은 현지 상황이 그리 험악하지 않다
고 밝히고 있다.

비즈니스측면에서의 위험도가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높은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치외교상으로 레바논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시리아는 사회주의체제
인데도 불구하고 자국의 경제적 필요에 따라 레바논에 대해선 자유시장경제
를 권장해야될 입장이다.

시리아는 레바논의 시장경제를 통해 자국에 필요한 외환을 끌어들이고
있다.

따라서 레바논에서는 자유방임적인 시장조건이 지속될 것으로 기업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레바논 현지인들은 다른 중동국가 사람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경제감각이 뛰어나다.

수도인 베이루트의 경우 전쟁에 휩싸이기 이전인 지난 70년대에만해도
중동의 금융중심지 역할을 했다.

따라서 서비스업등에 적합한 양질의 인력이 충분한 나라다.

여기에 폭탄을 맞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데 필수적인 대형 프로젝트들이
엄청나게 늘려 있다.

미국정부는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미국인들의 레바논 여행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베이루트행 비행기는 요즘 최고의 수익을 쫓아다니는 국제
비즈니스맨들로 만원이다.

[ 레바논 라피크 하리리 총리 ]

단골 분쟁지역인 레바논을 이끄는 라피크 하리리총리는 세계 1백대부자에
드는 억만장자다.

국가를 이끄는 총리가 자수성가한 기업인 억만장자라는 점에서 레바논의
사업환경이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 국제비즈니스맨들이
많다.

라피크 하리리총리는 53세로 레바논의 해안도시 시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베이루트대학을 졸업하고 21세때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갔다.

사우디에서 회계사로 일하다 건설회사를 세워 거부가 됐다.

사우디 왕가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2년 총리직에 취임한 이후 경제전문가로서 능력을 발휘해 정계에서도
장수하고 있다.

<양홍모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