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사망에 따라 중국 인민해방군이 20일 최고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고 군 소식통들이 밝혔다.

이들은 지난밤 강택민 국가주석의 주재로 열린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서
이같은 지시가 하달됐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모든 군인에 대해 자대 복귀명령이 내려졌고 복무지 이탈이 전면
금지됐다.

<>.중국정부는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애도기간을 6일간으로 정하고 국민들
에게 이를 준수토록 지시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20일 발표했다.

외교부는 등소평의 사망일이 19일이기 때문에 20일부터 25일까지가 애도
기간이 된다고 밝혔다.

장의위원회는 강택민 당총서기겸 국가주석을 주임위원으로 해 모두 4백59명
의 전.현직 고위지도급 인사로 구성됐다.

한편 중국정부는 등사망 이후 외국정부 대표들의 조문 의사표명이 쇄도하고
있는 것과 관련, "중국관례대로 외국정부와 정당 우호인사 등의 상주방문을
통한 조문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장례위원회(위원장 강택민 국가주석) 명의로 발표된 성명은 이같이 말하고
"만일 추도를 하려는 국내외 인사는 천안문 광장과 인민대회당 해외공관
신화통신 해외지사 사무실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조의를 표해줄 것"을 당부
했다.

또 중국정부는 20일부터 오는 25일까지의 등소평의 장의기간중 북경주재
외국기자들의 추도대회및 기타 조문활동에 대한 현지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외교부는 외국과 대만및 홍콩, 마카오 기자들의 북경 방문취재 역시 접수
하지 않으며 장의기간중 외교부의 정례 뉴스 브리핑도 일시 중지한후 오는
27일 재개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한뒤 5시간만에 발표된 장문의 성명은
지난 89년 천안문 민주화시위 유혈진압에서 보인 등의 역할을 정당화하는데
신경을 쓴 모습.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작성해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한 이 성명은
천안문시위 유혈진압 결정을 암시하면서 등이 국내의 정치적 혼란속에서
명확한 태도를 유지했다고 칭송.

이 성명은 또 "당과 정부는 등소평 동지와 다른 원로들의 확고하고 강력한
지지를 받아 명확한 입장을 유지하고 국가의 독립과 존엄성, 안보및 안정을
지켜냈다"고 지적.

<>.중국정치의 심장부를 상징해 온 천안문 광장은 전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
4시30분까지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되고 있어 등의 사망이 공식 발표된 뒤에도
몇시간동안 텅빈 상태로 유지.

천안문광장 경비병들은 기자들이 접근, 등의 사망소식을 전하자 이를 알지
못했던듯 처음에는 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경 북부에 있는 등의 사저에도 2명의 무장 경비병만 배치돼 있을뿐 정적을
유지.

<>.등의 사망이 20일 새벽 2시44분(현지시간)에 공식 발표된데다 해외를
겨냥한 관영 신화통신과 단파 TV를 통해서만 발표돼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날
아침에 일어나서야 등의 사망소식을 접했다.

시민들은 그러나 등이 고령인 점 때문에 그의 사망소식에 크게 놀라거나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날 아침 출근에 나선 한 근로자는 "등소평이 위대한 인물이지만 그의
죽음이 중국에 큰 변화를 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등소평 사망이 공식 발표된 20일 북경 시내 곳곳에는 등의 사망을
애도하는 조기의 물결을 이뤘다.

관공서와 당 기관 등에는 이날 오전 일찍부터 일제히 오성홍기가 조기로
게양됐고 베트남, 쿠바, 루마니아, 영국 대사관 등 일부 외국 공관에도
조기가 걸렸으나 북한대사관에는 조기가 게양돼지 않았다.

호텔등 주요건물에도 조기가 나부꼈고 택시들도 안테나에 빨간색 소형
깃발을 달아 애도를 표시.

이날 오전 9시께 천안문광장 인민혁명기념탑앞에 고위간부로 보이는
10여명이 대형 조화를 들고 찾아와 묵념.

그러나 한국대사관을 비롯한 상당수의 외국공관들은 등소평이 현직 지도자
가 아니라는 이유로 조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등소평의 사망 및 시신 안치 장소가 공개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등이
임종직전까지 후송돼 있었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는 인민해방군 직할의
301병원 부근은 이날 아침 예상외로 경비가 허술하고 출입 차량도 드물어
등의 시신이 안치돼 있지는 않은 것같다는 인상.

또 고궁(자금성)뒤 경산공원 옆 미량고에 있는 등소평의 저택 주변에는
공안 차량이 일반 차량 통행을 제지하고 경비 병력들이 배치됐으나 경비는
그다지 삼엄하지 않은 상태.

등 자택은 기관총을 든 인민무장경찰대원 2명과 권총을 찬 2명만이 경비
했는데 곡소리등 상가집 같은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았다.

<>.북경에 진출한 한국 상사 관계자들은 등소평 사망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돼 왔기 때문에 한-중 경제교류에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전망.

한국 상사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자본주의 국가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항상 대비를 해야 한다고 촌평.

한편 북경에서는 대학생들이 민주화 시위등에 항상 앞장서기 때문에 북경
당국은 만약의 소요사태를 우려, 북경대학등 대학가 주변에 대한 경비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CCTV는 등사망 발표 6시간만에 소수민족의 학생들에 대한 전문
교육기관인 민족대학 교수진과 소수민족 출신 학생들간의 애도 모임 장면을
중계하면서 소수 민족들도 모두 등의 사망을 애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

이는 중국중앙당국이 소수민족의 소요 가능성 등에 큰 신경을 쓰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한 관계자가 분석.

<>.이날 황장엽비서가 보호돼 있는 한국 대사관 영사부 건물에는 경비병력
과 차량들도 다소 줄고 보도진도 상당수 철수, 평소보다 한산한 분위기.

또 한국대사관 경비상황도 평소와 마찬가지이나 경비는 다소 완화됐는데
이는 등의 사망으로 이곳에 대한 관심이 부쩍 줄었기 때문.

이와 대조적으로 신문가판대에는 이른 아침부터 신문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로 붐벼 삽시간만에 신문들이 동이 났고 택시기사들은 계속 라디오를
틀고 등사망 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중국어 TV방송 CTN은 관영 신화통신이 등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1시간 전에 홍콩언론에 "북경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등이 19일 오후 9시
직전에 숨졌다"는 내용의 팩스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신화통신이 등사망 5시간여만에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한 것은 고위
지도자의 사망 발표를 늦춰온 지금까지의 관행을 완전히 깨버린 것이어서
그 경위가 주목되고 있다.

모택동의 경우, 지난 76년 9월9일 새벽 0시20분에 사망하자 같은 날 오전
11시께 이날 중으로 "중대 뉴스"를 발표할 것이라고 뜸을 들인뒤 사망
16시간만인 오후 4시에 사망사실을 공식 발표.

또 지난 95년 4월에 숨진 등의 라이벌 진운도 사망 28시간 뒤에야 사망
사실이 발표됐으며 이선념 전 국가주석은 사망 다음날 사망이 발표됐다.

<>.대만은 등소평에 의해 착수된 경제개혁으로 대만의 경제가 수혜를
입었다고 말하고, 등의 사후 새로운 평화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것을 중국측에
제안했다.

총통부 황곤휘 비서장은 20일 "등소평씨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우선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비서장은 "등씨가 추진해온 경제개혁 속에서 대만의 민간분야는 본토의
경제개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자본과 기술, 인력을 제공해 왔다"며
등의 경제개혁 업적을 평가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양측이 공동의 평화와 협력, 번영의 신분위기를 창출해
낼수 있도록 사업.정보.기술.학술연구.스포츠.농업 등의 분야에서 협력과
교류를 강화해 나갈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북경=김영근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