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북한노동당국제담당비서의 망명사건이후 중국은 이 사태가 자국
내에서 발생했는데도 말을 아끼고 있다.

구태여 있다면 아시아 유럽정상회의(ASEM) 외무장관회의에 참석한 전기침
중국외교부장이 유종하 외무부장관에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게 전부이다.

이는 중국외교관의 가이드북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는 "새로운 사건이 한국
영사관에서 발생했다"고 보도한후 입을 다물고 있다.

그동안 중국은 국가간 첨예한 대립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자국의 의견을
내놓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더욱 장고를 하고 있다.

왜일까.

우선 북한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어서다.

중국은 지난 49년10월1일 국가를 창건한지 엿새후인 10월6일 북한과
국교를 수립했다.

"옛벗"에 대한 의리와 함께 죽으나 사나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는 북한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놈의 정" 때문에 황장엽사건을 놓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중국으로선 수교한지 5년밖에 안됐으나 교역규모가 날로 커지는 한국과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한국은 중국의 3대교역국이다.

입만 열면 외국자본을 유치해 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중국이 "옛정"이냐
"실리"냐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중국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첨예한 것도 황장엽사건의 판단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황비서를 북으로 보내면 온건파들이 강택민 주석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을
테고, 한국으로 가면 보수강경세력들이 반발할 것이다.

중국은 사건 7일째인 18일 황장엽사건에 대해 한마디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외교부대변인의 정례 기자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하면서 이번사건을 마무리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중국 당국은 고민중"이다.

김영근 < 북경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