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 고 유가시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국제유가는 최근 고유가의 기준점이라 할수 있는 배럴당 25달러
언저리에서 춤추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이라크공습으로 촉발된 유가폭등세는 단기급등에 그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장기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경제는 인플레우려에 휩싸여 있다.

국제유가의 기준유종인 브렌트유는 지난달 평균 배럴당 22.89달러에
거래됐다.

8월에 비해서는 2.20달러가 높고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서는 무려
5.88달러나 오른 가격이다.

브렌트유가격은 이달들어서도 배럴당 1달러 이상 상승, 24달러선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산 서부텍사스 중질유(WTI)는 25달러선에 포진한다.

걸프전이 발발한 지난 91년 1월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같은 가격대는 업계전문가들이 올해초 예상한 배럴당 17~19달러보다
6달러이상 높다.

유가의 초강세는 먼저 "석유의 보고" 중동의 정정불안에서 비롯됐다.

이라크 북부지역의 쿠르드족 거점도시 아르빌을 이라크군이 점령하자
미군의 미사일공격이 단행됐다.

이어 유엔은 예정됐던 이라크산원유 수출재개방침을 무기연기시켰다.

이로써 국제석유시장에 하루 약 70만배럴의 이라크원유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무산됐다.

세계에너지연구센터(CGES)는 이라크원유 수출재개가 내년 상반기까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쿠르드족의 분쟁은 이달에도 재연돼 이라크 원유수출 가능성은 더욱
흐려졌다.

또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충돌로 80여명이 사망, 중동평화에
암운이 짙어지면서 유가상승을 부추겼다.

이렇게 불이 붙은 유가강세는 세계 원유수요의 증가, 공급물량의 감소 등
구조적인 요인으로 장기화될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세계원유소비를 올들어 최근까지 하루 약7,200만배럴로
추산한다.

세계석유소비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CED)의 소비증가율은
올해 1.9%이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개도국의 소비증가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3.1%이다.

특히 개도국의 내년도 소비증가율은 4.2%로 상승할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
(IEA)는 예상하고 있다.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의 소비증가율은 훨씬 더 높다.

대형차 붐이 일면서 미국의 경우 올해 휘발유소비는 4.4%, 한국과 브라질은
17~18%나 증가했다.

각국의 유류소비증가세는 앞으로 동절기로 접어들면서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반해 산유량은 오히려 감소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지난달 산유량은 8월보다 9만7,000배럴 감소한
2,582만4,000배럴에 그쳤다.

세계산유량의 60%를 차지하는 비OPEC국가의 지난달 산유량증가도 예상보다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이 빠듯한 수급상황은 각국의 원유비축량이 저조한 상황이어서 한층
악화되고 있다.

정유업체들이 이익극대화를 위해 비축량을 줄이는 수시구매전략을 채택하기
때문에 원유비축량이 지난해보다 크게 낮다.

특히 미국석유업계의 비축량은 이달초순 현재 전년동기대비 1,700만배럴
감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석유시장에 약간의 충격만 가해져도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이다.

국제시장 관계자들은 올 겨울철 원유가가 브렌트유 22~24달러, 미국산
WTI는 23~25달러수준의 강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같은 유가강세 전망으로 세계경제에 인플레가 발생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앞으로 3개월간 유가강세가 지속될 경우 프랑스에는 0.7%, 미국에는
0.6%의 물가상승요인이 발생할 것이라는게 영국투자은행 그렌펠의 분석이다.

영국 HSBC은행은 유가강세로 산유국 영국에도 인플레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할 정도로 세계의 인플레우려는 높다.

전량 수입석유에 의존하는 한국의 경우 파장은 더욱 크다.

통산부에 따르면 국제유가(두바이산 기준)가 배럴당 1달러 상승할때
연간 7억달러의 수입지출이 늘어난다.

또 국내유가는 평균 1.3% 인상돼 인플레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걸프전 이후 수년간 잠잠하던 국제유가가 큰 기침을 하자 세계경제가
다시 한번 몸살을 앓게 된 형국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