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지난주초 15개 회원국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역내기업의
보호를 위해 미국의 대쿠바 제재조치에 반대키로 결정했다.

EU집행위는 이결정에 호응,다음날 즉시 미정부가 이른바 "헬름스.버튼법안"
을 승인할 경우 단행할 보복조치 내용을 공개했다.

몇시간후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이법안의 실행을 6개월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EU측은 이에 그치지않고 리비아및 이란 석유산업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에
제재를 가하기로한 미상원의 결정을 반박하고 그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같은 EU의 대응은 지금까지의 유럽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15개국이 모인 EU란 실체를 십분 활용,앞으로 국제통상무대에서 미국을
견제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게 현지의 일반적 시각이다.

나아가 미국이 남발해온 일방적 무역제재에 대한 다른 지역의 불만을 반영,
미국이 쥐고 있는 통상주도권의 추를 유럽쪽으로 돌리려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EU의 이같은 공격적 통상정책은 다른 블록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세확대" 작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3월 한국등 아시아 주요국가들과 방콕에서 제1회 정상회담(ASEM)을
여는등 "아시아 껴안기"가 단적인 예이다.

높은 경제성장력을 바탕으로한 거대한 시장을 미국의 영향권에 그대로
방치할수 없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EU가 브뤼셀에 미국과 일본대표를 불러 이달말로 끝나는 미.일반도체
협정을 EU를 포함한 다자간 협정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한 것도 또다른
예이다.

미국측의 일방적 요구로 체결된 이 협정에 대한 일본의 불만을 부추겨
미국도 견제하고 실리도 얻겠다는 얘기다.

지난달 브리튼집행위원이 도쿄로 날아가 양측간 이에대한 입장을 재확인한
것은 이 때문이다.

EU가 지난해 7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 한국 일본등 아시아국가를 등에
업고 다자간 금융서비스협정을 성사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수 있다.

물론 이에대한 미국의 우려섞인 불만은 상당하다.

스튜어트 아이젠스타트 전EU대사가 "미국이 아시아시장의 문을 열어 놓으면
EU는 이에 무임승차한다"며 공격한 것처럼 미국이 중국과 지적재산권보호,
일본과 자동차 부품시장개방 협정을 체결하면 EU가 이에 끼여들어 이익을
챙겨온게 사실이다.

미.일반도체협상에 대한 EU의 중재도 결국 일본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방안
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EU의 아시아 껴안기 전략은 앞으로 보다 활발해질 전망이다.

24,25일 양일간 브뤼셀에서 열리는 아시아.EU 통상대표회담도 그방안의
일환이다.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싱가포르등 동남아연합 7개국 대표들과 자리를
같이해 투자자유화, 금년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WTO각료회담의 의제를
논의하자는 모임이나 아시아를 등에업고 국제 통상무대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EU가 미국의 견제세력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

결국 미국과 EU간 펼치는 힘겨루기의 틈새에서 등거리외교를 통한 실리
작전이 요청되는 때에 이른 것이다.

< 브뤼셀=김영규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