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국립기상연구센터(NCAR).

미일 두 나라의 정부와 업계가 이 연구센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상모델작업용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이 연구센터가 미제와 일제중 어떤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에 양국 정부와 관련업계가 자존심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센터가 현재 후보리스트에 올려 놓은 회사는 3사다.

슈퍼컴퓨터업계의 제1인자로 자타가 공인하고 크레이 리서치사가 미국측
후보로 나와 있다.

일본에서는 후지쓰와 NEC등 2사가 달려들었다.

미국의 대학이나 국립연구소가 외국산 슈퍼컴퓨터를 구매한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또 미국의 정부나 의원들도 슈퍼컴퓨터까지 외국제품을 사용한다면 무역
수지문제는 접어두고서라도 과학대국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국산품 애용"을 고집해 왔다.

실례로 지난87년엔 MIT대가 NEC슈퍼컴퓨터를 도입하려다 미국정부와 의회의
압력에 못이겨 국산품으로 급선회한 적도 있었다.

MIT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미국과 일본은 슈퍼컴퓨터통상분쟁까지 겪었고
90년엔 시장개방협상도 체결했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장벽은 여전하게 남아있어 미국에 슈퍼컴퓨터를 수출
하지 못한 것이 일본 업계의 한으로 남아 있다.

일본업체는 이번 콜로라도 기상연구센터에서 기필코 슈퍼컴퓨터 수출1호를
기록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후지쓰는 지난해 영국 버크셔에 있는 중기기상예보유럽센터에 크레이
리서치를 제치고 납품에 성공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콜로라도 기상연구센터도 비슷한 슈퍼컴퓨터를 찾고 있기 때문에 자사
제품이 적격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크레이 리서치사가 최근의 일본정부 조달입찰에서
두차례나 탈락된 점을 들어 은밀하게 미국정부에 보복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것이 미국무역회보를 통해 공개돼 양국간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한편 물건을 구입할 연구센터측은 연구프로그램 검색보고서에 따라 가장
적합한 제품을 선정할 것이라는 공식적인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일본간의 신경전을 감안해 연구소 내부의 검색얘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보안유지에 급급한 실정이다.

콜로라도 국립기상연구센터는 납품회사 선정결과를 5월초께 발표할 예정
이다.

또 그 결과에 따라 지난번 MIT건처럼 정당한 평가가 이뤄졌는지를 놓고
미국과 일본이 한판 통상분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