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료주의의 상징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왔던 일본 대장성이
해체의 수술대위에 올랐다.

주택금융전문회사(주전)의 대량 부실채권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내내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인 것이 대장성 무용론을 불러온 가장 직접적인 원인
이었다.

그러나 사실 주전문제는 "촉매제"에 불과했다.

"규제"와 "보호"라는 양날의칼을 휘두르며 무소불위의 힘을 남발해온
대장성에 대해 여론의 불만이 겹겹히 쌓여온 결과였다.

대장성 해체론은 일본 교육시스템을 만들어낸 최고의 엘리트들이 패배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대장성 관료들은 대부분 도쿄(동경)대출신에다 공무원시험에서도 수석을
차지한 사람들이다.

메이지(명치)시대 대장성 창립 당시에도 "일반 백성이나 법의 간섭을
받지 않도록 일본 최고의 인재로 대장성을 채우겠다"는 야심을 내걸었었다.

그동안 대장성은 그야말로 "재정및 금융문제에 관한한 법이요 행정이며
사법"("엔화의 가치" 저자 타가트 머피)이었다.

정치인들이나 언론들까지도 대장성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잘못 대장성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세무조사라는 보복조치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정부 부처들도 마찬가지였다.

돈줄(예산권)을 쥐고 있는 대장성에 잘 보여야 좀더 넉넉한 살림살이를
해 나갈 수 있었다.

은행등 금융기관들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대장성은 "행정감독"이라는 미명하에 사실상 금융기관들을 수류청정을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이점이 문제였다.

권력을 불려가며 모든것을 통제하던 대장성의실책은 곧바로 일본경제의
치명상을 가져 왔다.

80년대 경기활황국면에서 대장성은 지나지게 저금리 정책을 폈다가 버블
경제를 빚어냈다.

뒤이어 부동산 경기가 폭락하면서 거품은 꺼지고 일본경제에 큰 주름살을
만들어 놓았다.

세계 금융시스템이 개방형으로 탈바꿈하는 와중에서 일본만은 굳게 문을
걸어 놓았던 것도 대장성의 대표적인 실책이었다.

일본 경제발전의 비결이었던 관주도형 정책이 일본경제를 갉아먹는 독이
돼 버린 것이다.

현재 대장성 해체에 대해서는 론만 분분한채 뾰족한 결론은 맺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해체론의 촛점은 재정과 금융의 권한을 어떻게 떼어 놓느냐 여부이다.

이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방안이 "금융청"설립 구상이다.

은행, 증권, 국제금융등 금융관련 3국을 떼내 하나의 청으로 독립
시킨다는게 줄거리이다.

일본은행까지 금융청에 포함시키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은행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는 금융검사국만을 분리시켜 독립위원회로
만드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예산편성을 담당하는 주계국과 세제 기획및 입안을 맡고 있는 주세국이
세력을 부리면 금융 3국은 발언권이 약해진다.

이때문에 아예 주계국과 주세국을 총리밑으로 옮겨 대장성 권한을 축소
하면서 총리의 힘을 키우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대장성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돼자 자구책에 나섰다.

우선 "해체불가론"을 들고 나왔다.

재정과 금융 권한을 한꺼번에 갖고 있어야 효율적인 거시경제정책을 취할
수 있다게 주장의 요지이다.

선진7개국(G7)도 모두 양 권한을 한꺼번에 갖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정방안도 마련했다.

대장성은 지난해 12월 <>금융기관 행정지도 기준 객관화 <>외부감사제등
검사.감독기능 강화 <>금융기관의 정보공개 강화등의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방안만으로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돌릴 수 없는 상태이다.

외부감사만으로는 불량채권의 위험수위를 판단하기 어려운데다 단순한
검사강화도 검사요원의 부패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단순한개혁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을 할수 없다는 얘기다.

결국 대장성의 개편은 불가피한 상태이다.

메이지시대에는 "관료를 존경하고 백성은 무시하라"는 공식 슬로건이
있었다.

대장성 해체론과 함께 그동안 일본 국민들의 머릿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던
이런 관료주의적 사고도 해체의 길에 들어선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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