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금융도시로 불려졌던 베이루트.

약 20년간 지속된 내전으로 폭삭 내려앉았던 레바논의 수도가 중동의
금융중심지를 꿈꾸며 화약냄새를 말끔히 제거하겠다고 나섰다.

베이루트는 이미 폐허가 된 도시지만 그래도 금융중심지로의 영광을 되찾을
자격은 충분히 있다.

베이루트는 레바논내의 기독교와 회교도의 갈등에 주변 시리아와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등과의 난제까지 겹쳐 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내전이 발발하기전 베이루트는 서방은행과 중동 산유국을 연결해 주는 핵심
금융센터였다.

70년대초만해도 중동오일달러가 넘쳐나던 곳이다.

당시 레바논 정부는 금융거래에 대한 철저한 비밀주의 보장하면서 중동
오일달러를 끌어모왔었다.

그러던 베이루트가 이웃한 바레인과 키프로스등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화려
했던 과거의 유산은 아직도 남아 있다.

우선 레바논인의 탁월한 금융인 자질이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중동지역 금융거래의 첨병 역할을 한 연유로 금융업에 정통한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다.

런던이나 뉴욕금융가에서 중동지역 전문가로 활약하는 사람들은 십중
팔구 베이루트출신으로 보면 거의 맞는다.

레바논당국은 정책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

지난70년대 철저하게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입각한 금융산업정책을 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최근의 주변정세도 베이루트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내전이 종식됐고 팔레스타인이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외부충격으로 다시 회교도와 기독교도간의 싸움이 전개될 가능성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여기에 레바논을 둘러싸고 있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대결구도를 청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더 희망적이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자치정부의 재건계획과
시리아의 경제개방등으로 엄청난 전후복구사업비 수요가 일어날 수 밖에
없고 베이루트는 이들 개발자금을 중개하는 센터 역할을 맡으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벌써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기회를 잡기 위해 베이루트로 진출하기 시작
했다.

네덜란드의 ING뱅크가 베이루트에 지점을 냈다.

이를따라 프랑스의 엥도수에즈와 미국의 씨티뱅크등이 베이루트 진출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레바논 정부도 지난달 증권시장을 개설하는등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레바논정부는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 없이 배당이익에만 5%의 정도의 세금을
내도록 하는등 증권시장을 키우는데 안감힘을 쓰고 있다.

물론 베이루트증시는 상장기업이 15개에 불과한 초라한 모습이다.

레바논정부측은 그러나 이웃 산유국 기업들의 신규상장을 위해 유인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히는등 자본시장 육성에 강한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전후복구사업비 충당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이 나라 최초의 투자은행
인 "레바논 인베스트"도 최근 설립됐다.

이 투자은행은 선진국증시에서 약 1억달러상당의 컨트리펀드를 발행할
계획이다.

중동전문가들은 레바논의 화폐(레바논파운드화)가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냐가 베이루트 경제의 큰 변수라고 설명하고 있다.

레바논파운드의 환율은 지난93년초께만해도 달러당 2천5백레바논파운드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달러당 1천5백레바논파운드수준으로 가치가 상승해 있다.

그러나 베이루트의 장래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억만
장자인 라피크 하리리총리가 정치적 입지를 어떻게 다져가느냐에 달려 있다
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가 그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갈 경우 환율은 점차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는게 주변의 평가다.

베이루트가 한 정치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정도라면 그 전망은 보나마나한
것이라는 평도 없진 않지만 중동지역의 인물중심적 사회구조를 감안해 볼때
라피크 하리리총리의 행보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 있는 것은 사실
이다.

또한 모든 주변여건이 유리하게 돌아가는 만큼 베이루트가 금융중심지로
발돋움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게 중동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양홍모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