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기술은 어느나라나 1급 보안사항이다.

국방상 나라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탓이다.

미정부도 이때문에 그동안 암호기술에 대해서는 수출을 엄격히 통제 해
왔다.

그런데 미국이 지난 5월 고도의 암호기술에 대해 수출허가를 내줬다.

암호기술의 수출허가를 받은 기업은 미사이버 캐시.

인터넷을 사용한 "전자캐시"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지난해 8월 설립된 회사
이다.

사이버캐시는 최근미 결제대행회사 체크프리와 "전자지갑"이라는 전자캐시
시스템을 개발했다.

PC를 미니ATM(현금자동입.출금기)처럼 사용, 단돈 5센트의 비용으로
자유로이 송금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벌써 미 30개 은행이 도입을 검토하는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의 비결은 고도의 암호 기술.

사이버캐시는 온라인상에서 비밀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하는 암호기술이
전자캐시의 핵심이라는 판단아래 7백68비트에 달하는 암호기술을 개발해
냈다.

이 기술을 이용, 크레디트카드번호등 비밀정보를 인터넷에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

1비트는 암호의 알고리즘 자리수를 뜻하기 때문에 이 수가 클수록 암호
해독이 어렵다.

사이버캐시 이전에 개발된 최고 암호기술은 40비트.

사이버캐시는 기존기술의 20배 가까운 고도의 기술을 개발해 낸 셈이다.

이런 엄청난 암호기술이 나라밖으로 새나가도록 미국 정부가 허락한 이유는
뭘까.

달러에 이어 21세기 기축통화가 될 "전자캐시"의 세계주도권을 장악하겠다
는 속셈이다.

"미국정부는 세계 전자캐시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미기업의
발목을 잡는 멍청한 일을 중단한 것"이라는 한 업계관계자의 말속에서도
미정부의 계산을 읽을 수 있다.

그로부터 4달후인 9월 20일.

미캘리포니아의 한 호텔에서는 선진 7개국(G7)의 정부관계자들이 모여
미기업들로부터 각종 전자결제시스템에 대해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전자거래를 추진하는 비영리단체 "커머스네트"가 주관, 미기업들이 저마다
개발한 전자결제 시스템을 시연해 보이는 자리였다.

올해초 브뤼셀 G7각료회의에서 주요의제로 다뤄졌던 "전자거래"에 대해
좀더 심층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후속모임이었다.

미국이 전자결제시스템의 사실상 업계 표준(디펙토스탠더드)을 겨냥,
관.민합동으로 마련한 "판촉" 전초전인 셈이다.

현재 전세계에 개발된 전자캐시는 10여가지를 넘는다.

물론 대부분이 실험단계이긴 하지만 일부는 실용화로 들어선 것도 있다.

네덜란드 신흥 소프트웨어업체 디지캐시가 개발하고 지난 10월23일 미중견
지방은행 마크트웨인이인터넷에 첫 등장시킨 "e캐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e캐시는 말그대로 전자현찰이기 때문에 손으로 만져지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의 가치를 나타내는 금액, 화폐번호, ID번호등을 암호화한 "전자정보"가
바로 e캐시의 실체이다.

이용자가 전용소프트웨어를 사용, 인터넷에 접속하면 이 은행에 설치된
구좌로 부터 희망하는 금액을 자기 PC로 인출한다.

이 "돈"은 인터넷등 네트워크상의 가상점포를 통해 물건을 사고 팔때 대금
으로 이용된다.

판매업자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전자캐시를 마크트웨인에 송금하면 이은행에
설치된 구좌에 입금되는 것이다.

현재 마크트웨인은행의 e캐시서비스에 참가하고 있는 업체는 15사.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지만 전자캐시의 실용화에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는 큰 진전이다.

일본종합연구소는 지난 9월 스미토모은행, NTT, 세가엔터프라이즈,
미실리콘그래픽스, 미코닥, 미인터넷쇼핑네트워크등 약 40사와
"스마트아일랜드컨소시엄"(SIC)을 설립했다.

목적은 전자캐시의 공개실험.

e캐시, 전자지갑등 현재까지 개발된 각종 전자캐시시스템을 사용하면서
장단점을 비교하고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방법은 이렇다.

인터넷상에 게임센터 "스마트비트파크"를 개설, 슬롯머신등 단순 도박성
게임을 설치한다.

"판돈"은 인터넷상에서 제공되는 전자머니로 건다.

게임에서 이겨 어느정도 돈을 따면 쿠폰권으로 교환, 여행권과 참가기업의
상품등 각종경품을 탈수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실험한다는 점이 이 실험의
특징이다.

민간컨소시엄의 실험과는 별도로 일본은 98년 실용화를 목표로 정부차원의
"전자캐시"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프랑스의 "르포르트모네일렉트로닉", 스위스의 "포스트마트", 핀란드의
"아반트"도 모두 정부주도로 추진되는 유럽의 전자캐시이다.

지금까지 세계 금융시장은 달러가 주도해 왔다.

일본과 독일경제가 일어나면서 엔과 마르크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경제활동이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미래의 "전자세계"에서는
달러도, 엔도 소용이 없다.

네트워크상에서 유통되는 "전자캐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미.일.유럽의 경제대국들이 앞다퉈 전자캐시지원에 열을 올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