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베트남이 지난 75년 베트남전 종전이래 지속돼온 적대관계에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11일 오후2시(현지시간) 베트남과의 관계정상화를
공식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행사를 갖고 "미군전쟁포로
(POW)및 실종군인(MIA) 문제해결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며 베트남과의
20년 적대관계 청산을 결정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미.베트남 두나라의 국교재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다만 국교재개 시기결정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미국은 지난 93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대베트남 차관제공을
허용했고 지난해 2월 대베트남 금수조치를 해제했다.

또 올 1월에는 양국간 동결자산 반환협정에 서명한데 이어 워싱턴과
하노이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등 국교정상화를 위한 수순을 밟아왔던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정치적 명분보다 경제적 실익을 우선하는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삼 확인시켜준 조치로 풀이된다.

POW, MIA문제해결에 대한 베트남정부의 협조를 명목상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미국이 실제로 노리는 것은 인구 7천2백만의 베트남시장이라는 지적
이다.

1백40명의 지도층인사로 구성된 미경쟁력위원회는 지난해 미국기업들이
앞으로 10년간 최소 1천2백억달러규모의 사업기회를 향유할수 있을 것이란
장미빛 보고서를 내놨었다.

국가재건을 위한 베트남의 투자수요와 이를 통해 미국이 거둬들일수 있는
과실이 그만큼 엄청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기업들의 대베트남 투자는 아직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올 3월말현재 미국의 대베트남투자는 5억1천7백만달러로 국가별 투자순위
에서 8위에 머물고 있다.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대만의 25억1천만달러, 최대경쟁상대인 일본의
9억5천만달러에 비해 턱없이 낮은 액수이다.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베트남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이들 선발투자국에
내줄수 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이 정부는 물론 민간부문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금수조치해제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결국 미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과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의 정치적위험에
대한 보증으로 민간기업의 투자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
이었고 이는 곧 전면적인 국교정상화를 의미했다는 분석인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대베트남 국교정상화결정은 또 아태지역에서의 지배력
공고화전략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국가와의 유대강화를 기대하고 있으나 ASEAN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베트남을 도외시하고서는 이를 달성할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특히 베트남을 대중 견제카드로 활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중국은 최근 이등휘대만총통의 방미를 문제삼아 주미대사소환은 물론
경협에서 미국업체를 제외하는등의 초강경조치를 구사하며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결국 남사군도 영유권문제를 놓고 중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베트남을
사이에 끼워 중국길들이기 한방편으로 활용한다는 계산이란 지적이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