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의 수입규제를 주장하고 있는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가 지난
91년 일본차수입규제를 위해 펼친 활동은 브뤼셀 로비사상 성공작으로
꼽히고 있다.

91년2월 설립된 ACEA는 EU위원회 유럽정부및 기업간을 오가며 이익조정자의
역할을 수행, 그해 7월 EU와 일본간 자동차협정을 맺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EU는 당시 역내 자동차시장의 보호를 위해 일본과 협정체결을 추진중
이었다.

그러나 일본 현지생산량을 일본차 물량에 포함시키느냐는 문제를 놓고
영국과 여타 유럽국가간 상당한 이견을 보여 회원국간 입장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닛산등 일본업체들이 진출한 영국정부는 현지 생산물량을 일본차에 포함
시키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는등 일본 입장을 지지했었다.

게다가 푸조등 대중차생산업체와는 반대로 벤츠 BMW등 고급차메이커들은
수입물량규제로 일본이 고급차 수출에 주력할 것이라고 판단, 그 입장을
유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EU위원회는 회원국내 다양한 목소리를 조정하지 못해 일본정부와
협상을 진행시키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설립된 ACEA는 각국 정부 기업 그리고 집행위를 오가며 규제기간및
대수등 현안을 끈질기게 조정, 일본차 수입규제란 목적을 달성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익조정자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활동을 전개, 로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ACEA가 펼친 로비의 성공에는 "역내산업보호"란 대명제도 큰몫을 했다.

그러나 역내 이익단체나 기업간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는 그 해결이 쉽지
않다.

그만큼 로비의 강도가 강해 타협점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말 EU위원회가 2년여간의 진통끝에 포장재재활용법을 확정, 발표한
것이 그예이다.

스웨덴 포장전문업체인 테트라 파크사 유럽화훼상협회 포장재료업체의
모임인 팩키징 체인 포럼등은 재활용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폈으며
환경보호단체들은 이에대응, 보다 강력한 법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EU위원회는 결국 양측의 입장을 조정, 당초 마련한 재질별 재활용비율
60%를 15%이상이란 절충선에서 간신히 마무리지었다.

이업무를 담당했던 마르코 오니다씨가 최근 위스트리트저널유럽과 가진
인터뷰에서 "법안과 관련, 들어온 의견서가 1백9건에 이르렀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모든 로비활동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다.

수년전 프랑스및 이탈리아정부는 캐나다 소재 보잉 자회사인 드
하빌란드사를 인수하기 위해 EU위원회를 상대한 강력한 로비활동을 전개
했으나 승인을 얻지 못했으며 지난해는 독일 분데스포스트 텔레컴사와
키르히 그루페사가 케이블TV사를 합작, 설립하려는 시도도 실패로 끝났다.

보다 중요한 점은 로비주체가 기술적 흐름등 전문성이 부족한 경우 로비에
성공해도 그결과가 곧 뒤집히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대표적인 예가 고화질(HD)TV의 방송방식을 둘러싼 논쟁이다.

네덜란드 필립스와 프랑스통송은 차세대 TV인HDTV의 유럽 표준방송방식을
MAC로 불리는 선진 아날로그방식으로 결정할 것을 주장했었다.

이를위해 양사는 EU의 통신담당집행위원및 고위관리 그리고 유럽전자공업
진흥회(EACAM)와 접촉하며 맹렬한 로비 활동을 펼쳤다.

이로비가 주효,민간방송국등이 디지털방식을 선호했음에도 불구하고
집행위는 업계의 뜻을 반영한 초안을 마련했었다.

그러나 디지털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자 EU는 지난 93년 입장을 변경,
방송방식에 대한 표준화를 유보한채 스크린크기에 대한 표준화만 결정하고
이안을 일단락지었다.

한마디로 MAC방식은 물건너갔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방식이 EU의 공식입장으로 채택됐다.

이처럼 로비에 실패할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경우 기업이나 정부의 업무가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은 물론 변호사
고용비등 로비에 드는 비용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상당하다.

브뤼셀의 변호사 고용비용은 평균 8만~10만달러 정도, 워싱턴이 15만달러
정도인데 비하면 다소 싼편이나 이값은 EU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제공비
정도이다.

실제로 사건이 터지면 EU에 제출하는 서류작성 청문회준비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시간당으로 계산, 추가지급해야 한다.

여차하면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곳이 브뤼셀이다.

결국 로비를 펼치는 기업 스스로 보다 전문성을 갖고 이에 매달려야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브뤼셀에서 생존하려면 전문성과 치밀성을 갖춘 로비베테랑을 육성하는
장기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