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뤼셀=김영규특파원 ]유럽연합(EU)집행위가 최근 발표한 화폐통합 "녹서"
는 회원국간 단일화폐제 도입작업을 마무리짓기 위한 구체적 실행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환율조정체계(ERM) 구축과 유럽통화기구(EMI)의 발족으로 이어지는
화폐통합작업이 비관론의 확산과 함께 그 추진력이 약화되고 있는 지금
녹서를 제시, 이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을 제고시키는 역할을 톡특히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녹서는 화폐통합의 마무리절차를 <>경제통화연합(EMU)의 출범시기및 참여국
결정 <>회원국통화와 유럽공동통화간 교환비율 결정및 단일통화의 결제확대
<>단일통화의 민간부문 보급등 3단계로 분류했다.

1단계에서는 단일통화제에 참여할 회원국과 그 실시시기가 확정된다.

이를 위해 유럽중앙은행(ECB)및 유럽중앙은행시스템(ESCB)이 발족되고
단일화폐의 명칭결정과 함께 발행작업이 시작된다.

소요기간은 최장 1년 정도로 잡고있다.

2단계는 단일통화와 참여 회원국 통화간 교환비율의 확정으로 시작, ECB가
역외국 통화간 교환비율을 결정하는등 점차 통화정책이 각국 중앙은행에서
유럽중앙은행으로 이관된다.

회원국정부의 신규국채는 단일통화로 발행되며 증시거래및 금융기관의
각종 결제는 물론 민간기업간 거래도 단일화폐로 가능해진다.

소요기간은 최장 3년이며 회원국간 대규모 결제시스템 구축이 끝난다.

3단계는 일반 소비자들도 단일화폐를 사용, 각국의 기존화폐는 유통이
사실상 중단된다.

집행위는 일반 소비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과거 이단계를 단시일
내에 처리하는 이른바 "빅뱅"방식을 지양, "수주일내" 완료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녹서는 이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EMU 선언후 길어도 4년 이내에 통화
통합이 완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지난93년 마스트리히트조약에 따라 오는 97년부터 통화통합에
나서면 2001년초, 그리고 99년부터 시작하면 2003년초에는 유럽의 단일
경제권이 마무리된다는 설명이다.

집행위측은 "화폐통합이 실현되면 회원국간 상품거래에 드는 비용이
절감될뿐 아니라 유럽단일통화가 힘에서 달러및 엔과 균형을 유지, 국제환율
의 안정에도 크게 기여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집행위의 화폐통합안은 그러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한 점에서 높이
평가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문제점을 노출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 하나가 통합완료시까지 발생할 국제환투기와 이로인한 환율불안정을
회원국들이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EMU발족후 단일통화와 참여회원국간 교환비율이 확정되는 1년간 경제대국인
독일 프랑스의 화폐는 매집대상, 그리고 스페인등 약소국의 화폐는 투매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녹서는 이를 방지하는 방안으로 각국이 통화통합의 전제조건인 정부부채및
공공부채의 비율을 낮추고 물가및 금리수준을 안정시키도록 권유하고 있으나
국가간 경제력의 격차를 단시일내에 좁히기는 불가능한게 현실이다.

녹서는 또 EMU에 후발로 참여할 경우 ESCB이사회 참여권은 인정하나
결정권은 유보, 이른바 "다단계통합론"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를 안고있다.

특히 이탈리아와 스페인등 통화통합에 찬성하면서도 그 전제조건을 충족
시키기 어려운 국가들의 반발은 상당히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통화의 명칭을 확정하지 못한것도 앞으로 회원국간 논란의 소지를
남겨 놓고 있다.

녹서는 단일통화의 대명사 개념으로 지금까지 사용해온 ECU를 지칭할뿐
1단계에서 이를 확정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회원국은 그 명칭으로 ECU를 사용하는데 찬성하는 반면
EU의 실질적인 리더격인 독일은 "프랑켄"(독일통화의 초기명칭)으로 할것을
고집,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독일정부는 특히 "세계최강의 통화인 마르크를 포기하도록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며 이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통화통합에 참여
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보다 중요한 점은 통화통합에 대한 회원국정부내 정치적 의지의 결여이다.

영국은 지난 92년 ERM을 탈퇴한후 통화통합은 "선택조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덴마크 아일랜드등도 통화통합에 반대입장이다.

강력한 지지국인 독일과 프랑스도 현정부가 정치적 생명을 걸고 국민들의
설득에 나설 것인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녹서의 생명은 결국 각국정부의 정치적 의지에 달려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