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는가.

달러당 80엔대까지 이른 초엔고가 겨우 불황탈출기미를 보이던 일본경제를
다시 수렁으로 몰아넣으면서 기업들이 앞다퉈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한때 87엔대까지 갔던 환율이 지난 주말 미국의 경기침체기미등으로 단숨에
82엔선으로 내려감에따라 일본경제에 대한 위기감까지도 감지돼고 있는
정도다.

일본기업들의 강력한 지원부대였던 증시나 금융기관들도 곪을대로 곪아가고
있다.

전에없이 정치사회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미국등과의 대외
마찰도 격화되고 있다.

일본경제는 과연 전성기를 지났는가.

일본의 유명작가이자 경제평론가인 사카이야 다이치씨는 한마디로 일본
경제는 위기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위기를 강조하는데 대단히 열심인 그는 획기적인 규제완화와
관료들의 인식전환이 없이는 일본경제가 도저히 현재의 어려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카이야씨가 일본의 위기를 누누히 강조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거품경제의 붕괴로 시작된 불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 기업들의
실적이 말이 아니다.

증시도 침체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기 위해
안달이다.

거기에다 엔화도 초강세다.

아무리 살펴봐도 일본경제에 긍정적인 면이라고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카이야씨가 걱정하는 이유가 이런 요인들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고민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일본의 역사에 있다.

그는 "일본경제는 대략 70년정도를 주기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반복해
걸어왔다"고 분석하면서 "특히 내리막에서는 경제적 후퇴와 함께 대형지진
이나 화산폭발같은 재앙이 겹치는 특징이 있어 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본은 콘트라티에프의 파동설이 거의 완벽히 들어맞고 있는 나라"
라고 말하면서 "현재의 일본은 내리막으로 들어서는 전형적인 단계에 있다"
고 분석한다.

일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의 이야기처럼 호황과 불황의 주기
그리고 재앙의 도래는 이상하리만큼 거의 예외없이 관찰된다.

우선 최근의 상황부터 살펴보자.

일본은 올들어 고베대지진이 일어나 엄청난 희생자와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뿐만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사린가스사건을 비롯 가스살포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고 정치적으로도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함께 경제적 측면에서는 거품경제의 붕괴이후 불경기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

엔화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까지 상승해 있다.

올해 고베일대를 강타한 한신대지진은 패전이후 성장가도를 줄달음해오던
일본경제가 전성기에 이르렀던 80년대 후반의 버블경제이후 대략 5년만에
나타난 재앙이다.

그런데 직전의 재앙이 있었던 관동대지진때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메이지유신(1867년)으로 번영의 길을 달리기 시작한 일본은 세계제1차대전
(1914-1918)직후 경제가 최고의 정점에 달했다.

관동대지진은 이로부터 수년후인 1923년의 일이다.

이후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의 대공황영향까지 겹치면서 ''쇼와 공황''
을 겪었다.

1차대전무렵 팽창한 경제에 은행들이 대출을 크게 늘려 결과적으로 엄청난
부실채권을 안았고 기업들도 업적부진에 시달렸다.

일본은 이의 탈출구로 아시아침략을 본격화했고 결국에는 45년의 패전으로
치달았다.

바로 이전의 번영기였던 18세기초 문정의 영화 (1804-1829)도 경도대지진
(1830년)과 함께 하락길로 들어서 천보기근(1832-1838)등의 어려운 시기가
계속됐다.

좀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이같은 현상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카이야씨는 이에 대해 "재해가 일어난후 정부가 검약을 강조하고 규제를
강화해 수요위축과 불황이란 악순환을 불러들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규제를 풀고 수요를 확대해야 경제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는데 정부가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의 상황도 내수위축과 엔고등으로 악순환의 과정에 있다"고
말하면서 이같은 상황이 쉽게 바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내수위축과 엔고는 기업들의 자금조달원이 증시의 침체를 야기시키고 있다.

지난 89년말 4만엔대까지 올라갔던 닛케이평균주가는 최근들어 1만6천엔선
밑으로까지 내려갔다.

증시침체는 증권사의 수지를 악화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일반기업이나 금융
기관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자금조달실적만 봐도 지난 89년의 8조5천억엔선에서 91년이후에는 연간
1조엔에 미달하고 있다.

엔고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들은 앞을 다투어 해외로 나가고
있어 산업공동화에 대한 우려를 더욱 짙게하고 있다.

사카이야씨는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규제완화와
재정투자등이 필요하지만 현재의 관료들은 변화를 대단히 싫어한다"고 지적
한다.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엔고나 미국과의 무역마찰이라면 내부의 요인은
지나친 규제등이지만 두가지 모두에 대한 정부관료들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그의 이야기처럼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라면 일본은 어쩌면 지금부터 더욱
어려운 시기를 맞게될지도 모른다.

[도쿄=이봉구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