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일보복리스트를 발표하고 일본이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함에 따라 그동안 수면아래서 비등하던 양국 무역마찰은 수면위로 부상
했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을 놓고 세계양대 경제대국간에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고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일본이 대미역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은데다 오는 6월28일까지 약 40일간의
협상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일마찰의 전개방향과 WTO의 사태처리방향,
국제환율의 움직임등 3가지이다.

<>.미국은 16일 59억달러치의 일본산고급승용차에 대해 1백%의 보복관세를
내달 28일부터 부과한다고 발표했지만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미통상법에 따른 30일간의 유예기간보다 10일이나 더 긴 40일을 유예기간
으로 설정한 것이라든가 일본시장의 폐쇄성에 대해 WTO에 즉각 제소하지
않고 45일간의 준비기간을 둔 것이다.

일본도 상응하는 맞보복조치를 취하겠다는 지금까지의 강경입장과는 달리
단지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에 대해 WTO에 미국을 제소하는 선에서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앞으로 양국이 협상을 통해 미국의 대일제재가 발효되는 내달 28일전에
사태를 해결할수 있을지는 장담할수 없다.

양국의 입장이 강경하기 때문이다.

또 이문제가 경제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양국정치지도자들의 장래
운명과도 연결돼 있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은 대일무역적자중 60%가 넘는 약 3백70억달러를 자동차및 자동차부문
에서 발생하고 있어 이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일적자를 해소할 수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59억달러라는 사상최대의 보복규모를 결정한 것은 미국입장이 전에 없이
강경하다는 반증이다.

클린턴정부가 예비보복리스트발표와 함께 WTO에 제소하는 계획까지 추진,
"쌍칼"을 뽑아든 이면에는 96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정치적인 요인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자동차협상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이를
업적으로 내세울수 있고 <>일본의 무릎을 꿇게 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본시장
개방을 단호히 밀어붙일 경우 득표에 도움이 될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본입장도 강경하다.

지난 92년 미압력에 못이겨 미자동차부품구입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해 일본정부나 업계 모두 "대실수"라고 자책해왔다.

이때문에 이번에는 미국의 부품구입확대요구를 절대 수용할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미자동차협상의 일본대표인 하시모토 류타로일통산상도 클린턴못지않게
정치적인 고려를 하고 있다.

차기 총리를 노리고 있는 그로서는 미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이처럼 협상을 통한 사태해결을 가로막는 요소들도 있지만 사태가 원만하게
수습될 것임을 예고하는 요인들도 적지않다.

무엇보다 서로 싸울경우 둘다 피해를 입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때문에 양국은 협상창구를 계속 열어놓고 있다.

특히 내달 15-17일 캐나다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정상회담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6월28일을 제재발효시점으로 늦춘것은 G7회담을 염두에 둔 조치
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일제재발표와 일본의 WTO제소는 앞으로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전략일뿐 결국에는 협상으로 사태를 해결하게 될 가능성이
좀더 큰 것으로 여겨진다.

<>.미일싸움으로 WTO의 입장이 매우 곤란해졌다.

WTO의 최대 핵심회원국들인 두나라에 대해 WTO가 모호한 결정을 내릴 경우
WTO가 입을 상처는 무척 크다.

자칫하다가는 WTO의 신뢰성에 스스로 먹칠을 가할수 있어 미일사태는
WTO에게 심각한 딜레마이다.

미국이 제소할 일본시장의 폐쇄성에서는 미국에 승산이 있으나 일본이
제소한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에서는 일본이 이길 것이 확실하다.

여기서 문제는 WTO가 미국의 일방적인 무역제재의 근거가 되는 미통상법
301조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릴 경우다.

미의회는 지난해 WTO협정안을 비준할때 앞으로 5년간 미이익을 해치는
WTO결정이 3차례 내려질 경우 WTO에서 탈퇴한다는 단서를 붙여 놓았다.

미301조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오면 미국은 적어도 대외시장개방에서는
무장해제를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되면 미의회와 업계에서는 WTO탈퇴론이 득세할 것이다.

이같은 사태전개를 예상하고 있는 WTO로서는 함부로 일본손을 들어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WTO의 자유무역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국편을 들수도
없는 입장이다.

WTO가 이런 사정을 감안, 어느 누구손도 들어주지 않는 모호한 입장을
취할 경우 신뢰성은 땅에 떨어지고 WTO는 세계경제의 유엔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수 없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

이때문에 루지에로 WTO총장은 미일이 협상을 통해 해결할 것을 거듭 촉구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환율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미일무역마찰이 안고 있는 또하나의
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사태전개방향에 따라 달러가 재차 폭락하는 환율불안상황이 나타날수도
있고 달러가 회복는 환율안정상황이 전개될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달러가 회복되는 방향으로 환시가 움직이고 있다.

대일제재리스트가 발표된 직후 16일 뉴욕시장에서 달러는 전날의 달러당
86.35엔에서 86.60엔으로 소폭 상승했다.

"대일무역제재-일시장개방확대-대일무역적자감소"라는 인식때문이었다.

17일 도쿄시장에서도 달러는 강세를 유지, 전날폐장가보다 약간 오른
86.52엔(오후3시현재)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미일사태가 당분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문에 달러는 전반적으로 강보합세를 유지하면서 남은 이달중에
85-88엔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관측한다.

그러나 미일협상이 난관에 부딪치면서 미국이 다시 엔고압력을 넣을 경우
달러가 다시 80엔대전반이나 80엔대아래로 폭락하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
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