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 소매 유통체인점인 세븐 일레븐에서 일하던 한국인 김태근씨
(40)는 얼마전 사전 예고없이 해고통보를 받았다.

같이 근무하는 한국동료와 우리말로 얘기한게 화근이었다.

세븐 일레븐은 손님이 있을때는 반드시 영어를 사용토록 방침을 정하고
있는데 김씨가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김씨는 손님이 아닌 동료와 지극히 개인적인 대화를 했다고 항변했으나
회사측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결국 제재를 받아 근무조건이 나쁜 저녁 시간대에 배정됐고, 제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해고시켜 버린 것이다.

이처럼 미국땅에서는 영어만을 공식언어로 사용하자는 운동이 급속히 번져
가고 있다.

일종의 "언어보호주의"라고나 할까.

공화당이 다수당으로 등장한 104회 연방의회 개회이후, 이미 이같은 내용의
법안이 4개나 상정됐을 정도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민학교를 비롯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외국인의 영어
교육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과정이 모두
없어진다.

또 영어와 다른 언어가 함께 인쇄된 투표용지사용도 금지된다.

운전면허증을 경신할 때도 영어가 능통하지 못하면 발급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 법안은 지난81년 하야카와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주도로 상정됐었다.

이후에도 여러차례 시도됐었으나 번번이 여론에 밀려 무산되곤 했다.

일본계 캐나다인으로 언어학자였던 하야카와의원은 "언어를 통해서만이
그 나라 문화를 흡수하고, 정신을 통합할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가 만든 "미국영어기구"는 민간단체 차원에서 영어의 정부공식어 채택
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현재 영어의 공식어문제는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있다.

찬성하는 쪽의 논리는 이렇다.

영어만을 공식어로 채택하면 이민자들이 영어를 빨리 배워 미국화를 앞당길
수 있을 뿐더러, 정부가 지급하는 많은 수혜를 누릴 수 있다고 강변한다.

또 차이나 타운이니 코리아 타운이니 해서 집단을 형성해 있으면 자기네
전통문화를 전승한다는 의미는 있을지 모르나, 미사회로의 동화에는 악영향
을 끼친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이민자를 위한다는 건 명분일 뿐 내심으로는 이민족공포증과 특히
히스패닉공포증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번 인스티튜트(URBAN INSTITUTE)연구소의 통계를 보면 지난 90년 미국내
히스패닉계 비율은 11.9%였으나, 오는 2040년에는 출산율이 높아 27.8%로
2배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같은 전망이 미국인들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파이는 오히려 적어지는데 이민자들이 계속 늘어나 파이를 나눠 먹게
된다는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투표용지에 영어만을 표기하면 미국내 3분의 1이나 되는 히스패닉이
투표를 할 수 없게 된다는 통계도 있다.

자국계 사람을 의회에 보내기 어려울건 뻔하다.

미국내 주류사회로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의 비판론자들은 이민자들은 결국 접시나 닦는 하류층으로 전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영어의 공식어채택 움직임은 각주로 번져
현재 애리조나 앨라배마 일리노이등 19개 주가 영어를 주정부의 유일한
공식어로 인정하는 법을 갖고 있다.

메릴랜드주는 지난달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돼 상원에 회부됐고, 조지아주도
이와 유사한 법을 만들어 젤 밀러지사의 서명만 남겨놓고 있다.

이제 최대의 관심은 연방의회에서 이 법이 통과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한때 미국의 국익과 경제에 기여한다하여 이민자들을 환영했던
보수주의자들이 이제는 되레 반이민의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가는 선봉에
섰다.

미국은 관세를 통해 상품반입을 조절하듯, 영어에는 보호주의의 딱지를
붙여 자연스레 이민자들을 규제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내비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