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의 경쟁상대는 문턱높은 은행이 아닙니다. 코카콜라 디즈니
제너럴일렉트릭(GE)등 소비자와 친근한 기업들이 어깨를 겨룰 상대들이지요"

시티은행의 지주회사인 시티코프를 총지휘하고 있는 존 리드회장(56)의
경영관이다.

"소비자중심의 금융기관"을 지향해야 한다는 리드회장의 지론이 함축돼
있다.

리드회장이 시티에 발을 들여놓은 때는 지난 65년.

MIT슬로운경영대학원을 갓 졸업한 26세의 청년 리드는 당시 씨티코프회장
이었던 월터 리스턴에 의해 발탁됐다.

패기만만했던 리드에게 처음 맡겨졌던 일은 수표처리업무.

해마다 경비가 15%나 늘었고 전직률도 50%나 되는등 누구도 맡기 싫어했던
"사고부서"였다.

그러나 리드에게는 일거리도 되지 않았다.

치밀한 조직력으로 곧 부원들을 장악했고 업무자동화를 병행, 비효율적인
요소들을 제거해 나갔다.

능력을 인정받은 리드는 해외 소비자금융시장개척을 위한 특별기획팀에
합류했다.

시카고에서 태어났으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등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등
해외에서의 생활경험이 높이 평가된 것.

리드는 리스턴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20세기 초반부터 시티은행이 유지해 왔던 해외금융소비자들과의 유대관계
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건의했지요. 기업뿐만 아니라 일반인에 이르기
까지 고객층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고객으로서의 일반인들을
도외시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고정관념을 깨고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리드는 승승장구, 80년
이사대열에 올랐다.

84년 리스턴회장의 퇴임으로 최고경영자자리를 차지할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리드가 내세운 "전세계적 소비자은행"이란 슬로건이 먹혀들었다.

회장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입사 19년만의 일이다.

회장자리에 오른 리드는 괴팍스러울 정도로 엄격하고 독재적인 자신의
업무추진스타일을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업무를 지시할때의 목소리도 친근하게 들리도록 연습할 정도였어요.
일거리가 너무 많아 부하들이 감당할수 없을때 나서서 처리해 주는 "오즈의
마법사"가 되기를 원했어요"

시티는 그러나 무리한 대출로 위기를 맞았다.

수렁은 깊었다.

경기도 잠에서 깨어날줄 몰랐다.

이스트만코닥 아메리칸익스프레스 GM IBM등 대기업회장들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리드회장의 퇴임도 기정사실화되는 듯했다.

한평생을 함께한 부인 샐리와의 사이도 93년 이혼도장을 찍을 정도로
삐걱거렸다.

그러나 92년부터 대대적인 경영합리화작업에 나섰다.

골프도 삼갔다.

회장취임당시 핸디7이었던 실력이 핸디14이상으로 줄어들었다.

때마침 금리인하와 부동산열풍이 진정돼 수습에 가속이 붙었다.

지난해에는 93년보다 52%나 많은 34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총자산수익률 자기자본이익률등에서도 업계최고를 자랑했다.

주가는 91년보다 400%나 뛰었다.

"84년 22%였던 소비자금융비중이 지난해 56%로 높아졌어요. 다른 은행과는
달리 어려울 때 해외영업과 소비자금융을 되레 강화한 것이 회생할수 있는
힘을 줬지요"

리드회장의 장기목표는 "시티"를 가장 친근한 금융서비스브랜드로 인식
시키는 일이다.

"시티가 코카콜라와 같은 브랜드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고 리드회장은
강조한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