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베를린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기후회의가
개막되면서 이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로비전이 가열되고 있다.

군소도서국가연합과 환경단체들이 주도해온 찬성측 진영에는 세계적인
보험회사들과 각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가세했다.

여기에 맞서고 있는 산유국 개도국들은 화석연료 다소비업체들의 지원사격
을 받고 있다.

이번 회의는 92년 리우환경정상회담 결의사항 실천방안을 논의하는 자리
이다.

리우회담 결의는 200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년 수준으로 동결하자
는 것이다.

그런데 기상이변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군소도서국가연합이 200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년 수준에서 20% 줄이자는 강경안을 제시함에 따라
회의 첫날부터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군소도서국가연합 회원은 태평양.카리브해의 36개 섬나라.

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로 인한 기상이변에는 거의 책임이 없으면서
매년 해수면 상승.대홍수.엘리뇨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들을 대표해 이번 회의에 참석한 네로니 슬라데 서사모아 유엔대사는
"군소도서국가연합의 제안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기상이변의 또다른 피해자인 보험회사들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영국 보험회사 로이드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회의에 참석한 리처드 킬링
전부회장은 "우리 회사는 87년 영국을 강타한 폭풍 때문에 처음으로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면서 "전문가들을 동원, 각종 자연재해를 검토해본 결과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번 기후
회담을 지지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기상재난보험조합의 전문가인 데이비드 만은 각종 환경회의에서 온난화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보험시장 규모가 연간 1천8백억달러에 불과한 반면 한번의 기상
이변으로도 3백억-5백억달러의 손실을 입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상변화전문위원회(IPCC)의 버트 볼린 위원장은 지구온난화의 급진전을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5개국 1백59개 지방자치단체장들은 29일 군소도서국가연합의 제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계기후회의에 맞춰 29일까지 베를린에서 사흘동안의 회의를 갖고
"원자력이 화석연료의 적절한 대체는 아니다",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 목표
를 설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또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배출가스 통제권을 강화해 줘야 한다고 주장
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를 강화하자는 제안에 가장 강력히 맞서고 있는
국가군은 산유국 개도국들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은 군소도서국가연합의 제안이 채택될 경우 석유
수요가 감소할까 우려하고 있으며 중국 등 개도국들은 경제성장이 둔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지구온난화의 일차적인 책임자는 선진국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선진국들이라고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리우협약에 따라 200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0년 수준으로 억제하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11일간 계속되는 이번 회의에서는 군소도서국가연합의 제안이
채택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도국 산유국들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데다 선진국들도 리우협약 준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안은 그러나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에 소극적인 산유국 개도국들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