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패션업체 이탈리아 구치사의 전회장 마우리치오 구치(46)가 27일
밀라노에서 출근길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한때 중세 피렌체의 메디치가에 비유될만큼 영화를 누려온 구치가는 이제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마우리치오는 이날 밀라노에서 출근하다가 총격을 받았다.

누가 무슨 이유로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고급 가죽가방과 액세서리 소품들로 유명한 구치사는 지난 53년 창업자
구치오 구치가 사망한 이후 가족간의 재산다툼으로 숱하게 불화를 겪었다.

큰아들 로돌포와 작은아들 알도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유언에 따라 회사
지분을 절반씩 물려받았으나 이에 불만을 품고 법정소송까지 벌이며 재산
싸움을 벌였다.

피살된 마우리치오는 로돌포의 아들로 창업주의 손자.

지난 83년 부친이 사망한후 아버지의 전재산을 상속받아 구치주식의 50%를
차지하면서 작은아버지인 알도일가와 경영권싸움을 벌였다.

2대에 걸친 이싸움에서 마우리치오는 삼촌과 4촌형제들을 회사에서 쫓아
내고 경영권을 확보 84년에 구치회장에 올랐다.

그때 나이 불과 35세였다.

알도를 비롯한 친척들은 마우리치오 제거공작에 나섰다.

마우리치오가 막대한 상속세를 빼돌리기 위해 아버지의 사망전 서명을
위조해 주식을 양도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우리치오는 결국 87년 스위스로 도망하고 말았다.

그가 피신해 있는동안 구치사의 경영권은 정부가 임명한 밀라노 대학
교수에게 맡겨졌다.

상속세 탈세혐의로 기소됐던 그는 다행히 항소심에서 승소 89년 회장직에
복귀했으나 다시 조카들과의 내분에 휘말리면서 93년 9월 아랍계은행에
자신의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87년 마우리치오의 작은아버지인 알도도 무리한 사업확장에 따른 빚을
견디다 못해 87년 구치사지분을 매각, 사실상 구치일가는 회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 것이다.

구치와는 또다른 브랜드인 파울로구치는 알도의 아들중 패션디자이너인
파울로 구치가 독자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86년 당시 81세였던 친아버지 알도를 탈세혐으로 고발한 인물로
구치가의 불행은 창업주의 사망이후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마우리치오의
피살로 막을 내리게 됐다.

구치사의 신화는 1906년 피렌체의 작은 마구점에서 시작됐다.

말안장 등을 팔던 구치오는 전에 런던의 고급호텔에서 웨이터로 일하면서
많이 보았던 고급가죽가방을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구치의 상점은 로마와 밀라노로 진출했고 2차대전이후 파리,뉴욕,런던등의
패션가를 휩쓸었다.

창업주 구치오는 맨손으로 대기업을 일구는 신화를 이룩했지만 후손들의
재산싸움으로 신화는 3대를 넘기지 못하고 말았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