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블화의 폭락 행진이 거듭되면서 러시아 경제가 또다시 살인적인
초인플레의 늪에 빠지는게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벌써부터 루블화의 붕괴 니 벼랑에 몰린 러시아 경제
운운하며 파국 이라는 다소 성급한 진단을 내리고 있기도 하다.

루블화 환율은 10일 모스크바은행간외환시장에서 미달러화에 대해
직전 최고치를 꿰뚫는 달러당 3천81루블을 기록한데 이어 11일 또다시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면서 달러당 3천9백26루블까지 치솟는(루블화
가치하락) 숨가쁜 급변 장세를 연출했다.

이는 전날보다 8백45루블이나 오른 것이다.

이같은 루블화 가치 폭락사태는 이미 예상된 것이었지만 하락세가
예상보다빠른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루블화 가치는 지난 7월 미달러화에 대해 3.1% 평가절하된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도가 붙어 8월에는 4.5%,9월에는 17.9%가 떨어진데
이어 10월 들어서는 불과 열흘만에 1천루블이상 폭락하는 곤두박질
장세를 보였다.

루블화는 지난해 5월 달러당 1천 루블에서 달러당 2천 루블(94년 7월)로
떨어지기 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그러던 것이 불과 3개월만에 2천루블에서 4천루블선까지 급락한 것이다.

시장관계자들은 이런 추세대로 갈 경우 루블화 가치는 조만간 달러당
6천루블선까지 폭락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러시아의 금융체제는 물론 시장경제개혁자체를 파국으로
몰고 가게 된다는 점에서 최근의 루블화 폭락 사태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3천루블 혹은 4천루블선이 붕괴됐다는 상징적 의미 이상의
위기감을 담고 있다.

러시아 경제전문가들은 루블화 폭락 원인을 세가지로 보고 있다.

<>러시아 경제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올여름 농업 및
군수산업부문으로 풀려 나간 국고보조금이 통화팽창을 초래한데다 <>은행들
까지 나서서 달러화 투기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은행들의 달러화 투기는 환전수수료를 불법으로 며칠씩 묵혀 가면서
까지 달러화를 사들인뒤 곧바로 되파는 형식으로 루블화 가치를 크게 떨어
뜨려 놓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서방 전문가들은 더이상 루블화 하락을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루블화 가치의 추가하락은 금융체제를 마비시키고 이어서 고인플레를
유발,러시아의 시장경제개혁 자체를 최악의 위기국면으로 몰고갈 것이라는
우려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 김병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