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한국기업들도 유럽의 로비활동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특히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의 로비 활동은 미국과는
또다른속성을 보여 주고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로비는 오늘날 브뤼셀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산업 가운데 하나다.

EU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브뤼셀에는 약3천개 그룹,1만여명의 로비스트
들이 활약하고 있다.

EU 집행부격인 유럽위원회의 말을 빌면 유럽위원회 관리 1,3명당
1명꼴로 로비스트들이 진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난 90년에 비하면 두배 수준에 달하는 것이다.

유럽내 거의 모든 대기업들과 무역관련 단체,지방정부들이 브뤼셀에
로비스트들을 거느리고 있다.

상술에 밝은 일본의 무역관련 단체들과 대기업들 역시거미줄 같은
로비망을 구성해 놓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기업들에 비하면 사뭇 대조적이다.

유럽위원회와 로비스트들간의연결고리를 제대로 읽지 못해 수난을
겪었던 미기업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이러한 무방비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유럽위원회가 기업들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막강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유럽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독일의 구스타프&그레테
쉬케단츠사의 일부 사업부문을 매수할수 있었던 미국의 프록터&갬블사나
EU의 독점금지법에 막혀 워싱턴과 브뤼셀을 오가며 수개월간을 낭비해야
했던미마이크로소프트사 빌 게이츠 회장의 얘기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유럽위원회는 기업 매수합병(M&A)과 독과점은 물론 수입관세,상품포장및
상표부착,오염방지,공공조달및 폐기물처리등에 이르기 까지 거의 전분야에
걸쳐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유럽위원회의 권한이 미치는 지리적 영역 또한 날로 확대되고 있다.

내년 1월에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등 북유럽 4개국이새로운 EU
회원국이 된다.

구소련 붕괴이후 시장경제체제로의 편입과정을 밟고 있는 동유럽국가들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무언가 일을 하고자 하는 외국기업들이 명심해야할 첫번째
수칙은 브뤼셀의 로비 스타일과 워싱턴의 로비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워싱턴에서는 로비가 부정적이지만 브뤼셀의 경우는 보다 긍정적이다.

예를 들면 유럽위원회는 공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기업및
관련 단체들의 로비활동을 지원한다.

유럽위원회는 아주 자유롭게 로비스트들의 논리전개에필요한 기술적
자문과 정보등을 제공해주고 있다.

올해초 브뤼셀에 설립된 유럽공공관계연구소(EIPA)라는 기관은 영어와
프랑스어로 유럽로비기법 이라는 특강까지 해주고 있다.

브뤼셀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비스트들은 당연히 위싱턴 보다 훨씬더
광범위하고 공명정대한 로비활동을 펴게 된다.

하지만 워싱턴과 브뤼셀간의 차이점을 인지하는 것은 유럽로비
의 초보단계에 불과하다.

유럽에서의 효과적인 로비를 위해서는 정계및 재계의 내부 소식통과
같이 일할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일부 전직 유럽의회 의원들및 관리들이 농업이나
전기통신등과 같은 특정 관심분야를 대상으로 부티크식 로비회사를
설립,운영하고 있다.

EU가 갖고 있는 방대한 양의 기업정보를 활용하는 방법도 배워
둬야한다.

EU는 전회원국에 걸쳐 1백80개 이상의 유럽정보센터를 갖고 있다.

이들정보센터는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도 관심분야
시장현황에 대한 최신정보는 물론 위원회가 지원하고 있는 각종
서비스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EU는 이밖에도 IBCN이라는 네트웍 운영을 통해 기업들로 하여금
해당 분야 합작파트너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브뤼셀의 로비스타일을 모두 숙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이는 21세기 통합유럽에 대비한다는 점에서 대가를 지불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지적이다.

< 김병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