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열린 APEC(아태 경제협력체) 재무장관회의는 이 회의를 설립하는
목적에서부터 마찰이 빚어지긴 했으나 대부분의 참가국들이 이 회의의
존재가치를 수긍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졌다.

주도국인 미국측으로서는 당초의도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쌍무적으로 상대
하기 껄끄러운 아시아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금융시장개방을 공략할수 있는
채널을 확보했고 다른 나라들은 공동대응을 통해 미국을 견제할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다.

창초 미국은 이 회의를 통해 아태지역국가들이 지금보다 금융시장을 대폭
개방토록 유도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공동발표문에 외국인직접투자확대 국가간 자본이동원활화 채권시장 발전등
개방의 의미를 갖는 실무적인 단어를 최대한 삽입시킨 것도 그래서다. 특히
APEC재무장관회의 설립목적에 "자본시장 통합"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 중국
에는 단일시장을 추구한다는 약속을 명분화시키려 했다. 이번에 이어 다음
회의의 의장국도 미국이 차지하고 차기회의 개최지를 워싱턴으로 잡으려고
시도했던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볼수있다.

하지만 이같은 미국의 기도는 상당부분 수정됐다.

가장 두드러진 수정은 "통합"이라는 용어를 삭제한 대목이다. 회원국간의
경제력 차이가 한격하고 정치체제가 다양해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는게
표면적인 반발이었다. 실질적으로는 자칫하면 미국에 의해 재갈이 물려질
수도 있는 위험한 용어를 "합의문"에 삽입시킬수 없다는 반론에서 였다.

앞으로 회의운영에 "합의" "협력"을 더욱 보장한다는 문구도 추가됐다.
미국의 독주는 받아들일수 없다는 얘기인 셈이다.

무언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대책이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도
먹혀들었다. ADB(아시아개발은행)의 자본금을 두배로 늘려 후발국을 지원
토록 한게 그 사례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낭패를 본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 개바을 확대키로
진로를 정한만큼 향후 회의에서는 보다 실무적인 개방을 다룰수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인권문제등으로 관계가 미묘한 중국을 타자간회의
형태로 "다스릴"수 있게 됐다.

아세안국가들은 회의중 빚어진 말레이지아의 반발로 단결의지를 과시했고
다음 의장국을 따내는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 후진국들은 ADB증자로
실질적인 지원도 확보했다.

결국 이번회의는 앞으로 이어질 실무회의등에서 일단 교두보를 확보한
미국이 무차별 공격을 해올 경우 우리가 어떻게 대응을 할것이냐는 숙제를
남겨놓은 셈이다.

<호노룰루=정만호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