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마라나의 더갤러리GC(파71·7469야드)에서 열린 LIV 골프 2023시즌 2차 대회(총상금 2500만달러) 최종일. 2라운드까지 공동 7위로 선두에 4타 뒤진 채 출발한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33)가 ‘일’을 낼 거라고 예견한 이는 없었다.

못 뒤집을 만한 격차여서가 아니었다. 2015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그린브라이어 클래식 우승 후 한 번도 트로피를 만져보지 못한 ‘한물간 선수’란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LIV에 온 건 단체전을 잘하고 싶어서다”고 밝힌 이적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개인전 성적으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팀 상금’이라도 벌어볼 심산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대니 리가 ‘쩐의 전쟁’으로 불리는 LIV 골프를 접수했다. 그는 이날 열린 대회 3라운드에서 2언더파 69타를 기록했다. 최종 합계 9언더파 204타를 친 대니 리는 연장전 세 번째 홀에서 버디를 낚아채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은 400만달러(약 52억원). 여기에 단체전 상금 12만5000달러를 합해 약 54억원을 손에 넣었다. 그가 PGA투어에서 10년 넘게 뛰면서 벌어들인 통산 상금 1536만3106달러(약 200억원)의 4분의 1가량을 3일 만에 벌었다.

지난해 출범한 LIV 골프에서 동포 선수가 우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LIV 골프에는 한국 국적 선수는 없고 대니 리와 함께 케빈 나, 김시환 등 동포 선수 3명이 뛰고 있다. 대니 리는 “내가 아직도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니 리는 리디아 고보다 앞서 ‘천재 골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선수다. 한국에서 주니어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뛰다가 뉴질랜드로 건너간 그는 2008년 US아마추어 챔피언십 정상에 오르며 잠재력을 꽃피웠다. 당시 18세1개월의 나이로 우승하며 타이거 우즈가 보유한 18세7개월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반년 앞당기기도 했다.

이듬해 프로로 전향한 뒤에는 유러피언투어(현 DP월드투어) 조니워커 클래식을 제패했다. ‘제2의 타이거 우즈’란 기대를 한몸에 받고 PGA투어에 진출했지만, 그다지 신통치는 않았다. 2015년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끝으로 PGA 생활을 마무리했다.

대니 리는 이날 퍼트에 울고 울었다. 연장 두 번째 홀(18번홀·파4)에서 2m ‘챔피언 퍼트’를 놓쳐 3차 연장으로 끌려갔다. 같은 홀에서 열린 3차 연장에선 두 번째 샷을 그린 위에 올리지 못해 파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홀까지 약 8m가 남은 상황에서 그는 퍼터를 꺼내들었다. 이른바 ‘텍사스 웨지’ 작전이었다. 힘차게 때린 공은 깃대를 강타한 뒤 홀 안으로 사라졌다. 대니 리의 우승은 그렇게 확정됐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