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 박인비(33)는 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IA 클래식의 ‘안방마님’이다. 2010년 대회가 생긴 이래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0년간 준우승을 세 번이나 차지할 정도로 성적도 훌륭하다. 작년 11월 이후 국내에 머물던 박인비가 투어 복귀전을 이 대회로 정한 이유다. 박인비가 통산 21승을 와이어투와이어(1~4라운드 모두 1위로 우승)로 장식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통산 21승 달성 초읽기

박인비는 2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버드의 아비아라GC(파72·6125야드)에서 열린 대회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쳤다. 중간 합계 12언더파 204타를 기록한 박인비는 공동 2위 허미정(32)과 이민지(24·호주), 멜 리드(33·잉글랜드)를 5타 차로 따돌리고 선두를 굳건히 지켰다. 박인비는 지난해 2월 호주오픈에서 투어 20승을 달성했다. 이번 대회를 제패하면 13개월 만의 우승이 된다.

이날 1타 차 선두로 경기를 시작한 박인비는 전반부터 물오른 퍼트감을 선보이며 2위와의 격차를 벌렸다. 박인비는 5번홀(파5) 버디에 7번홀(파4) 버디를 추가하며 경쟁자들이 주춤한 사이 4타 차 선두로 치고 나갔다. 위기가 찾아온 것은 11번홀(파3). 6번 아이언으로 친 티샷이 왼쪽으로 흐르며 핀에서 17m 떨어진 위치에 섰고, 3퍼트를 범한 것.

이 홀에서 1타를 잃자 이민지가 2타 차까지 쫓아왔다. 베테랑 박인비는 흔들리지 않았다. 12번홀(파4)의 3퍼트 위기를 5m 파 퍼트 성공으로 탈출한 그는 13번홀(파4)에서 4m 거리의 퍼트를 홀컵에 떨어뜨리며 버디를 잡아 다시 2위 선수들과의 격차를 4타로 벌렸다. 17번홀(파5)에서 세 번째 샷을 핀 2m 거리에 붙인 그는 침착하게 버디를 낚아 1타를 더 줄였다. 박인비는 “본선(3~4라운드)부터 코스 전장이 300야드가량 짧아져서 어색했지만 잘 적응한 것 같다”며 “후반 초반에 흔들렸는데 13번홀에서 버디를 잡고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상승세 꺾인 미국 선수들

박인비는 이번 선전으로 도쿄올림픽 출전 티켓을 사실상 확보하는 모양새다. 도쿄올림픽에는 오는 6월 28일 세계랭킹 기준으로 국가별로 상위 2명씩 출전할 수 있다. 세계랭킹 15위권에 2명 이상의 선수가 있는 나라는 최대 4명까지 나갈 수 있다. 세계랭킹 4위인 박인비는 1위 고진영(26), 2위 김세영(28)에 이어 한국 선수 중 세 번째 순위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인비는 “올림픽은 항상 좋은 동기 부여가 된다”며 “아마 올림픽이 없었다면 제가 오늘 여기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인비의 선전은 다른 한국 선수들의 킬러 본능을 깨우고 있다. 고진영과 허미정은 이날 버디쇼를 펼쳐 순위를 끌어올렸다. 공동 10위로 경기를 시작한 허미정은 이날 버디 6개, 보기 1개를 묶어 5언더파를 쳐 2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허미정은 2019년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 이후 2년 만에 통산 5승에 도전한다.

지난 드라이브 온 챔피언십에서 2년7개월 만에 예선 탈락의 아픔을 맛본 고진영도 곧바로 반등에 성공했다. 고진영은 이날 버디 5개, 보기 1개를 묶어 4타를 줄였다. 중간 합계 6언더파를 기록한 고진영은 공동 5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다. 올해 열린 세 대회에서 잇달아 우승한 미국 선수들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 상위 10명(톱10) 가운데 미국 선수는 6언더파 공동 5위를 달리고 있는 렉시 톰프슨(26)이 유일하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