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코스’를 ‘괴물 골퍼’가 삼켰다. 브라이슨 디섐보(27·미국)가 콧대 높은 US오픈까지 정복하며 명실상부한 남자 골프 최강자로 떠올랐다. ‘미친 코스’로 불렸던 윙드폿GC(파70·7469야드)는 야수 같은 그의 파워 골프에 백기 투항했다. 하지만 ‘게임체인저’인 디섐보가 골프팬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 황제의 왕관을 쓰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슬로 플레이 등 여전히 뒷말을 낳는 개성 강한 매너로 ‘불편함’을 느끼는 팬들도 많기 때문이다.

‘밤 앤드 가우지’ 앞세워 첫 메이저 우승

디섐보는 21일 미국 뉴욕주 윙드풋GC에서 열린 제120회 US오픈 최종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2개, 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6언더파 274타를 친 디섐보는 2위 매튜 울프(21·미국)를 6타 차로 따돌리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었다. 디섐보는 이번 대회에서 유일하게 언더파를 기록했다. 앞서 이곳에서 다섯 차례 열린 US오픈에서 언더파로 우승한 선수는 1984년 퍼지 죌러(4언더파)가 유일했다. 통산 7승을 기록한 그는 우승 상금 225만달러(약 26억원)도 거머쥐었다.

2015년 US아마추어 챔피언십을 제패한 디섐보는 이날 우승으로 아널드 파머, 진 리틀러, 잭 니클라우스, 제리 페이트 그리고 타이거 우즈 등과 함께 US아마추어 챔피언십과 US오픈에서 모두 우승한 12번째 선수가 됐다.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개인전·US아마추어·US오픈까지 제패한 건 역사상 니클라우스와 우즈, 디섐보뿐이다.

올 들어 체중을 20㎏ 늘리며 헐크로 변신한 디섐보는 특유의 장타공식으로 경기를 풀어갔다. ‘밤 앤드 가우지(bomb & gouge)’. 티샷을 무조건 멀리 날린 뒤 웨지 거리에서 그린 공략 성공률을 높이는 파워 골프의 전략이다. 극단적인 디섐보의 전략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윙드폿의 러프 요새를 허물어버렸다. 그는 120년 US오픈 사상 가장 최악의 페어웨이 안착률(41%)을 기록하고서도 63.89%의 그린적중률을 기록하며 타수를 야금야금 줄여갔다. 9번홀(파5)이 하이라이트. 508m 길이의 이 홀에서 티샷으로만 342m를 보낸 그는 2온에 성공한 뒤에 약 12m 거리의 까다로운 이글 퍼트를 성공시켰다. 그는 대회 직전 코스 전략을 묻자 “어차피 페어웨이를 놓칠 거면 그린에서 가까운 러프에 떨구는 게 유리하다”고 했다. 디섐보는 우승을 확정한 뒤 대형 스크린에 부모님이 등장하자 “골프 할 수 있게 해준 두 분께 감사하다”며 눈물을 떨궜다.

주변 의식 않는 스타일로 자주 구설

2016년 PGA투어에 데뷔한 디섐보는 전공(물리학)을 살려 아이언 클럽의 길이를 똑같이 만들어 쓰고 팔뚝에 퍼터 그립을 대는 퍼팅 등 다양한 실험을 시도해 ‘필드의 물리학자’로 불렸다. 우승이 이어지자 골프계는 ‘집념과 도전의 성취’라며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느림보 골퍼’ ‘잔머리 골퍼’ 등 그를 따라다니는 악평도 많다. 주변을 개의치 않는 성격 탓이다. 2018년에는 야디지 북 표시용으로 제도용 컴퍼스를 들고나와 협회의 제재를 당했다. 2017년에는 앞뒤가 똑같은 퍼터로 공 뒤 옆에서 다리를 모은 채 홀 쪽을 바라보며 스트로크하는 ‘말안장’ 퍼팅을 하다가 미국골프협회(USGA)에 불법 장비 사용으로 지적받았다.

지난해 한 대회에서 디섐보는 3m 퍼트를 하는 데 2분 넘게 시간을 끌어 브룩스 켑카 등 동료들의 날 선 비판에 휩싸였다. 디섐보는 그러나 “타수를 줄이기 위해서 어떤 실험이라도 할 것”이라며 “어디까지 가능한지가 나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경기 규칙을 자주 거론하며 경기위원과 충돌하는 것도 디섐보가 눈총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올해 그는 러프에 있는 개미굴 때문에 공 위치를 옮겨야 한다거나, OB경계선에 공이 있다고 경기위원에게 주장하기도 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US오픈 마지막날인 20일에도 17번홀(파4) 그린 근처에서 디벗을 이유로 프리드롭을 해 개운치 않은 뒷말을 남겼다. 이미 울프에게 6타 나 앞선 상태에서였기 때문이다. 경기력은 특별하지만 경기 스타일은 타이거 우즈 후계자로 보기엔 비호감이란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윙드풋GC의 코스가 선수 간 실력 변별력을 판단하는 데 적합한 코스인지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극단적으로 어렵게 세팅된 그린과 코스 탓에 그린 경사를 이용한 백보드 샷이 남발되는 등 운이 승부를 가르는 주요한 요인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