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윙드풋GC(파70·7469야드). 천하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들에게도 ‘두려움의 대상’이다. 대표적인 예는 ‘윙드풋 대학살’로 불리는 1974년 대회. 당시 우승 스코어가 헤일 어윈이 기록한 7오버파였다. 이 대회에서 두 자릿수 오버파로 커트 탈락을 경험한 한 선수는 “너무 분해 주차장 차 안에서 15분간 쉬지 않고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윙드풋GC는 이전까지 총 다섯 번 US오픈을 열었는데, 1984년 대회(4언더파, 퍼지 젤러)를 빼놓곤 한 번도 언더파 스코어 우승자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려운 코스를 ‘명예’로 생각하는 US오픈 주관단체 미국골프협회(USGA)에는 안성맞춤 코스인 셈. 타이거 우즈(45·미국)는 “윙드풋은 난도를 높이지 않고도 메이저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18일(한국시간) 같은 장소에서 막을 올린 제120회 US오픈 1라운드의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21명이나 언더파를 적어냈다. ‘대학살’을 기대했던 USGA에는 실망스러운 결과. 선수들에겐 ‘파티’나 다름없었다.

단독 선두인 저스틴 토머스(27·미국)는 이날만 5언더파 65타를 적어냈다. 그의 역대 메이저대회 1라운드 최저타 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67타였다. 또 65타는 윙드풋에서 열린 US오픈 1라운드 최저타 기록이기도 하다. 토머스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라운드였다”고 했다. 7번홀(파3) 홀인원을 포함해 4타를 줄이며 공동 2위에 오른 패트릭 리드(30·미국)는 “이렇게 언더파가 많이 나올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골프계에선 ‘부드러워진 그린’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웨브 심프슨(35·미국)은 “그린이 생각보다 말랑했다”고 했다.

선수들의 기량이 윙드풋을 이미 넘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340~400야드를 쳐대는 ‘장타 신인류’가 우글거리는 PGA투어에서 길고 빽빽한 러프나 빠른 그린만으로는 더 이상 예전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친 코스를 힘으로 제압하는 ‘밤 앤드 가우지(bomb & gouge)’ 전략을 쓰는 선수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밤 앤드 가우지는 무조건 멀리 날린 뒤 웨지 거리에서 그린 공략 성공률을 높이는 파워골프의 한 유형이다. 토머스는 이날 티샷으로 평균 323야드를 날린 뒤 러프에서건 페어웨이에서건 웨지샷으로 강하게 공을 퍼내 홀 근처에 붙였다. 그의 평균 페어웨이 안착률은 64%였으나 그린 적중률은 78%에 달했다.

상당수 선수들은 이런 예단을 경계했다. 2015년 챔피언인 조던 스피스(27·미국)는 “전반적으로 핀이 쉬운 지점에 꽂혔을 뿐”이라며 “핀 위치가 더 어려운 곳으로 옮겨지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활약한 영건들과 달리 힘이 달리는 베테랑들은 고전했다. 우즈가 버디 5개를 기록하고도 3오버파(공동 71위)를 적어냈고, 필 미컬슨(50)은 러프를 전전하다 9오버파를 쳤다. 출전자 144명 중 142위다. 메이저 1라운드에서 받아본 성적 중 최악이다. 미컬슨은 US오픈 우승컵 한 개가 모자라 커리어 그랜드 슬램(4대 메이저 석권)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