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숙 한국장애인골프연구소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전신 자세교정 의류를 들어 보이고 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발성을 돕는 제품도 연구 중인 그는 “장애인 관련 제품 개발에 모든 걸 걸겠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골프연구소 제공
안선숙 한국장애인골프연구소 대표가 자신이 개발한 전신 자세교정 의류를 들어 보이고 있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의 발성을 돕는 제품도 연구 중인 그는 “장애인 관련 제품 개발에 모든 걸 걸겠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골프연구소 제공
“아이들을 도우려고 시작했는데 그 아이들이 되레 제게 선물을 줬네요.”

안선숙 한국장애인골프연구소 대표(40)가 입고 나온 레깅스는 한눈에 봐도 독특했다. 실리콘 재질의 ‘근막경선 밴드’가 겉을 둘러싸고 있어서다. 이 바지는 장애인의 일상 자세를 교정하고, 올바른 골프 자세까지 도와주는 ‘전신 자세교정 의류’.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외래교수이기도 한 그가 3년간의 개발 끝에 내놓은 기능성 의류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지적장애 아이들은 몸도 많이 불편한 경우가 대다수”라며 “틀어져 있는 몸을 꾸준히 교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준회원인 프로골퍼다. 하지만 장애인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열 살 때 후진하는 차에 깔렸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퀴와 바퀴 사이 공간으로 빨려들어갔다.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오른 무릎 인대가 모두 끊어지는 중상을 당했다. 지금도 여전히 두 다리가 불편한 이유다.

“사고 후 접합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 재활 과정을 거쳤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재활’이라는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았어요. 시기를 놓친 거죠.”

안 대표는 중학생이 된 뒤 미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골프를 시작했다. 아픈 기억을 잊고 몰두하기에 좋았다. 그는 172㎝의 큰 키를 앞세워 아마추어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다.

하지만 꼭 필요했던 재활 시점을 놓친 게 결국 문제가 됐다. 다친 오른 무릎 사용을 본능적으로 억제하려다 보니 자세가 틀어졌다. 프로대회를 뛰기에는 스윙 동작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그는 투어 프로의 꿈을 접었다.

자신처럼 재활 시기를 놓쳐 후회하는 이가 없도록 하자는 마음으로 책을 잡았다. 골프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이화여대 대학원에선 운동역학으로 진로를 틀었다. 최근 ‘근막경선 밴드를 이용한 골프 운동 프로그램이 발달장애 청소년의 자세, 보행, 골프 스윙, 말 운동성, 자립성에 미치는 영향’이란 박사 논문을 썼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자연스레 장애인 단체와 연을 맺었다. 서울 노원구 장애인복지시설 ‘동천의집’과 협업해 장애인 골프단도 운영 중이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근육 회복이 매우 더딥니다. 처음에는 밴드를 이용해 몸의 주요 부위를 잡아주거나 자극하는 방법으로 운동 효율성을 높이려 했어요. 하지만 일상생활에선 밴드를 몸에 감고 생활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걸 깨달았죠. 언제 입어도 편한 옷을 만드는 게 중요했습니다.”

자세교정 의류의 윗옷은 밴드가 양어깨를 뒤로 당겨줘 구부린 상체를 펴도록 돕기 때문에 일반인 자세교정에도 효과적이다. 안 대표의 제품은 최근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 주최한 스포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지원 사업의 일환인 ‘2019 스포츠산업 창업데모데이’에서도 호평받았다. 오는 11월 양산이 목표. 사업가로, 교수로, 주부로 1인 3역을 하는 게 힘들지는 않을까.

“다섯 살, 일곱 살 된 우리 애들이 저와 같이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를 가장 즐거워해요. 힘들 일이 뭐가 있겠어요.”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