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속 회사채 경색에 레고랜드 사태로 시장 불안 확산
정부, 비우량채·PF·ABCP 적극 지원…시장 심리 안정 기대
대내외 변수에 근본 해결책 한계 지적도…금융사 리스크 관리 필요
정부 자금공급 수단 총동원…자금시장 불안 가라앉을까
최근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한 국내 자금시장 경색에 대해 정부가 23일 동원 가능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신속히 집행하겠다고 나섬에 따라 시장의 불안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돈을 풀어 대대적인 자금 지원에 나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힌 영향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열리는 24일 오전부터 자금시장의 불안감이 진정돼 시장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고금리 추세가 여전한데다 부동산 시장 침체 등과 맞물려 있어 이번 대책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23일 자금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게 된 배경에는 그동안 경색됐던 회사채 시장에 레고랜드발 자산유동화어음(ABCP) 사태가 불을 지르면서 각종 도산설 등 자금 시장의 불안 심리가 커진 점이 고려됐다.

지방자치단체의 신용보강도 신뢰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시장에 퍼져 투자심리가 한껏 위축됐고, 기업들이 줄줄이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돈맥경화' 현상이 급격히 확산됐다.

회사채 AA- 등급 3년물의 금리는 지난 20일 오후 기준 연 5.588%로 집계돼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BBB- 등급 3년물의 금리도 같은 날 연 11.444%로 연고점을 찍었다.

최근 최고 신용등급의 기업들마저 연이어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면서 시장의 경색을 가속화했다.

지난 17일 한국전력공사(AAA)는 연 5.75%와 연 5.9%라는 이례적인 고금리를 제시하며 4천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으나 1천200억원 어치가 유찰됐다.

지난달 강원도가 빚보증 의무 이행을 거부한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는 지방자치단체에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높은 신용도를 부여해왔던 시장의 신뢰를 단번에 흔들어놨다.

이처럼 자금 시장의 불안 심리가 극에 달하자 정부가 조기에 불을 끄겠다며 휴일인 23일 경제 수장들을 모두 소집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 등 당국 수장들이 모여 회사채 및 단기자금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시장안정 방안을 내놓은 것은 시장 불안에 선제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증권사 등 금융사들은 최근 정부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 재가동 등 각종 대책이 나왔지만 실제 단기 자금 시장의 긴박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정부 자금공급 수단 총동원…자금시장 불안 가라앉을까
하지만 이날 정부가 사실상 동원 가능한 수단을 모두 쏟아내면서 자금 시장 안정에 정부가 총력을 다하겠다는 확실한 의지를 보임에 따라 최소한 단기적으로나마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 플러스알파(+α) 규모로 확대해 운영하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채안펀드 20조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 실제적으로 가능한 자금 지원이 모두 담겨있다.

특히 정부는 채안펀드의 경우 당장 24일부터 1조6천억원의 가용 재원을 투입해 회사채·CP 매입에 나서고 추가 자금조성 작업(캐피탈 콜)도 즉시 개시하겠다고 밝혀 자금경색 완화에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비우량채를 대상으로 하는 회사채 및 CP 매입 프로그램의 한도를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확대한 것 또한 단기 자금 시장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대책으로 꼽힌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에 발이 묶여있는 증권사 등 금융사가 발행한 CP를 이 프로그램의 매입 대상에 포함한 것도 부동산 PF 시장의 불안 심리를 줄이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한국증권금융이 자체 재원을 활용해 PF와 자산유동화어음(ABCP) 차환에 어려움을 겪는 증권사에 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책으로 꼽힌다.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채안펀드 등 우량채 위주 매입만 치중한다고 여겨 시장에서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인 비우량채와 부동산 PF, ABCP 등의 대거 매입을 밝혀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지자체가 ABCP 보증의무를 이행하겠다고 확약했지만 이미 깨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강원도의 레고랜드 보증의무 파기로 인해 이미 금융시장에선 "정부에 준하는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지자체의 보증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 전방위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정부의 대책은 시장경색에 대응하기 위해 자금을 공급하는 단기 처방에 불과할 뿐, 고금리·고환율·고물가로 인해 초래된 경기침체 우려나 해외 불안요인에 대한 해결책은 될 수 없어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시장 침체와 수출 부진에 따른 무역적자, 기업실적 부진 등 국내 경제를 둘러싼 거시 여건이 전방위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아닌 다른 부문에서 언제라도 위기 촉발의 불씨가 발화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이번 정부 대책이 근본적인 불안 해소책이 될 수 없으며 결국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금융위기와 달리 금융당국이 국내 금융사들에 대한 건전성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어 급격한 자금시장 붕괴는 없을 것으로 보고는 있으나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안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내 금융사들의 건전성은 좋아졌다"면서 "다만 최근 발생하는 대내외 변수는 워낙 예측할 수 없고 급변한다는 점에서 금융사들 또한 이에 맞춰 리스크를 줄이는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