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RE100 대안으로 뜨는 CF100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직원들을 혼냈다고 한다. 하도 ‘RE100, RE100’ 하길래 RE100이 대세인 줄 알았는데, RE100이 아니라 CF100이 뜨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 고위 관료가 얼마 전 전해준 얘기다.

RE100은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이다. 영국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이 2014년 시작했다. 반면 CF100은 사용 전력 전부를 무탄소(carbon free) 에너지로 채우자는 개념이다.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탄소 발생이 없는 원전과 수소연료전지까지 활용하자는 것이다.

RE100은 지난 대선 TV토론 때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RE100,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그게 뭐죠?”라고 해 화제가 됐다. 최근엔 삼성전자가 RE100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해 조명받았다.

한국은 태양광·풍력 여건 나빠

하지만 RE100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은 더더욱 그렇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에 필요한 일조량과 바람의 세기가 나쁘기 때문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풍력 발전기가 집중 설치된 남해안의 바람 세기는 영국 북해 일대나 독일의 절반도 안 되고 에너지 생산량으로 따지면 거의 세 배 차”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국토가 좁아 태양광 발전을 하려면 산을 깎고 농지를 밀어내야 한다. 친환경 발전에 친환경적이지 않은 방법이 동원되는 것이다.

게다가 재생에너지를 마구잡이로 늘리면 전력 계통망이 불안해진다. 전기는 출력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전이 날 수 있다. 태양광, 풍력은 낮과 밤에 따라, 구름이 끼냐, 안 끼냐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하다. 그만큼 전력 계통망이 불투명해지고 정전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통상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량의 20~30%를 넘으면 계통망이 불안정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불안정성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 안정적 전력 공급이 중요한 한국이 감내하기 힘든 조건이다.

RE100이 진짜 문자 그대로 ‘재생에너지 100%’인지도 논란이다. RE100 가입 기업은 태양광 발전소 등에서 재생에너지 인증서를 구입하는 식으로 RE100 목표를 채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전 있는 한국엔 CF100 유리

그래서 대안으로 부상한 게 CF100이다. CF100은 구글이 2018년 선언하면서 부각됐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를 24시간 가동하려면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안정적인 원전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유엔 산하 지속가능에너지기구도 CF100을 지지한다. 유럽연합(EU)과 한국 정부가 최근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분류한 것도 CF100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일각에선 CF100은 24시간, 365일 내내 무탄소 에너지를 쓰겠다는 약속인 만큼 RE100보다 쉬운 과제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기업에 납품 조건으로 RE100을 요구하면서 좋든 싫든 RE100을 따라야 한다고 하소연하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62%는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RE100 대신 CF100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RE100이 적합하냐, CF100이 적합하냐는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원전이 있는 한국엔 CF100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