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비즈니스의 만남…소비자는 스토리에 열광
1985년 스웨덴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 보드카’의 미국 유통을 맡고 있던 미셸 루스는 미술가 앤디 워홀을 찾아갔다. 앱솔루트 병을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예술가와 기업이 함께 작업하는 일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얼마 후 워홀은 ‘앱솔루트 워홀’이란 콜라보 작품을 내놨다. 앱솔루트는 이후 워홀뿐만 아니라 키스 해링 등 많은 예술가와 작업했다. 이는 곧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잘 알려진 아티스트 겸 아트디렉터 한젬마는 “보드카 중 앱솔루트가 사실 최고급은 아니라고 한다”며 “하지만 사람들은 보드카 하면 앱솔루트를 떠올리는데, 아트 콜라보를 통해 변화에 앞장서온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한젬마의 아트 콜라보 수업》을 통해 그는 이처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예술과 비즈니스의 결합 사례와 그 효과에 관해 설명한다. 저자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후 다양한 창작,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술가와 기업을 이어주며 아트 콜라보 활성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기술 개발과 마케팅 홍보의 영역에서 기업 간 격차는 크지 않다. 이를 넘어서 소비자의 관심을 끌고 신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아트 콜라보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코카콜라, 나이키, 스와치, 루이비통 등 세계 최고 기업이 콜라보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다. 스티브 잡스, 제임스 퀸시 등 비즈니스 거장들은 탁월한 아티스트기도 했고 예술에서 비즈니스의 영감을 얻었다.

이런 움직임이 국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아트 콜라보가 이뤄졌다. 최근엔 중소기업도 시도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예술적 스토리에 열광하고, 그 특별함에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결합’에만 의의를 둬선 안 된다. 콜라보에서 중요한 것은 결합을 넘어선 ‘공존’이다. 그러기 위해선 열린 태도로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며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강조한다. “콜라보는 만남과 연결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유능함이 결합된다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창조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각각의 독립적 주체가 만나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콜라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