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이 기업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을까요? 요즘 주식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 상당의 기업 지분을 인수하면서 현금 대신 전환사채(CB)를 발행해주는 방식입니다. 스와프거래이자 일종의 ‘외상’ 거래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올 들어서만 화신테크 미래SCI 한일진공 등이 지분이나 자산을 인수할 때 CB를 발행해 이것으로 대금을 치렀습니다. 공시에선 ‘대용납입’이라는 용어로 표현합니다.

과거 유행한 현물출자 방식의 유상증자와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현물출자 증자는 상장기업 신주를 받는 대가로 현금 대신 현물(주식 또는 부동산)로 대납하는 걸 의미합니다. 반면 ‘CB 대용납입’은 기업 경영권이나 지분을 사오기 위해 매각자에게 CB를 발행해서 지급합니다. 인수자는 당장 자금이 없어도 다른 기업을 인수할 수 있어 좋고, 매도하는 측은 신주보다 투자 조건이 유리한 CB를 취득할 수 있어서 선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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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테크는 지난 11일 CB 발행을 활용해 회사 두 곳의 지분을 잇달아 취득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코스닥시장 기업인 유테크 지분 4.93%를 70억원에, 비상장사인 지이 지분 100%를 190억원에 사들였습니다. 유테크 지분 인수대금은 전액 CB를 발행해 지급했고, 지이 지분 인수대금 가운데 100억원은 보유자금으로, 90억원은 CB를 발행해 매각자인 김용호 지이 대표에게 지급했습니다.

각각의 화신테크 CB 만기 이자율은 연 5%입니다. 매각자는 CB 금리보다 주가 상승에 따른 주식 전환을 기대합니다. CB는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 전환가격을 하향 조정하는 리픽싱 조항이 있어 유리합니다.

CB를 활용한 거래는 소액주주에게 악재일 수도, 호재일 수도 있습니다. 사업 다각화라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CB 발행에 따른 대기물량 부담(오버행)은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신규 사업 진출 효과와 오버행 부담을 저울질해봐야 합니다. 화신테크 주가는 공시 발표 당일 6.23% 떨어진 데 이어 다음날 12.8% 급락했습니다. 시장에선 유테크와 지이 지분 취득에 따른 CB 물량 부담을 크게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상장기업이 제대로 된 회사 지분을 적정한 가격에 인수한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출자금액이 최근 사업연도 말 기준 자산 총액의 10%를 넘으면 주요사항 보고서를 통해 외부기관 평가의견서 등을 첨부하고 출자의 타당성을 기재해야 합니다. 평가의견서에선 출자 대상 기업의 실적 추이와 사업 전망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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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상당수는 자산 총액의 10%를 넘지 않아 출자 대상 기업의 현황과 인수가격 타당성을 알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과거 코스닥시장에선 이런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부실 비상장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식의 ‘뻥튀기 출자’가 종종 이뤄졌습니다. 전문가들이 CB 대용납입 방식의 비상장기업 출자를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수지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