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업계의 잔혹사는 2009년 시작됐다.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통신3사가 인터넷망을 이용한 IPTV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다. 유료방송 시장 내 경쟁이 격화되면서 압도적이었던 케이블TV의 시장점유율은 줄어들고 수익성은 떨어졌다. IPTV 업체의 케이블TV 방송국(SO) 인수 시나리오는 이때부터 나왔다. IPTV 사업자는 가입자를 늘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할 수 있고, 케이블TV 업체는 더 어려워지기 전에 시장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첫 신호탄은 6년 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현 CJ헬로)이 쐈다. 2015년 11월 SK브로드밴드가 CJ헬로비전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듬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인수를 불허하면서 거래가 무산됐다. “SK브로드밴드가 CJ헬로를 인수하면 CJ헬로가 영업하고 있는 방송 권역 23곳 중 21곳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된다”는 게 공정위의 논리였다. 이 기준으로는 어떤 IPTV의 SO 인수도 불가능했다. 유료방송업계 인수합병(M&A) 논의가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이유다.

다시 논의가 본격화된 건 2017년 하반기다. ‘케이블TV업계 1위인 CJ헬로를 인수해야 단숨에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LG유플러스가 협상 테이블에 나왔다. CJ E&M과 CJ오쇼핑을 합병해 ‘콘텐츠+커머스’ 사업에 집중한다는 전략을 짠 CJ도 연내에 CJ헬로를 매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양사는 양해각서(MOU)를 맺고 협상을 시작했지만 진전은 더뎠다. 무엇보다 CJ에는 2016년 공정위의 불허 결정이 ‘트라우마’였다.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가 또다시 공정위가 불허하면 직원들이 받을 상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협상이 해를 넘겨 지지부진해졌다.

두 회사는 지난해 물밑에서 몇 차례 가격을 주고받으며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거래 종결은 요원해 보였다. LG유플러스도 급할 게 없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등으로) 어차피 살 곳은 우리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상황이 급변한 건 지난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CJ헬로가 다시 기업결합심사를 신청하면 과거와는 다른 판단이 가능하다”며 전향적인 신호를 보냈다. LG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경쟁자인 KT와 SK텔레콤도 CJ헬로 인수전에 뛰어들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CJ가 2016년의 트라우마를 벗어던질 수 있는 계기였다. 그렇게 양사 간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LG유플러스는 지난주 그룹 지주사인 (주)LG와의 협의를 통해 최종 가격을 정한 뒤 CJ 측에 통보했고, CJ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딜’이 성사됐다.

유창재/이동훈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