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국내 기업은 지난해 말 기준 772개다. 지분을 1% 이상 보유하고 있거나 국민연금 전체 주식 운용액의 0.5%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이다.

의결권보다 한발 더 나아간 주주권 행사는 일단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를 대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이 요건을 충족하는 회사는 280여 개다. 상법상 주주권 행사 요건인 3% 이상 보유 기업은 이보다 많은 500여 개로 추산된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면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이는 대상이다.

국민연금이 이렇게 많은 기업을 상대로 의결권과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능력과 인프라를 갖췄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실무를 담당하는 운용전략실 산하 책임투자팀 인원은 7명에 불과하다. 이들 7명이 주주총회에서 찬반을 결정하는 의결권 행사의 실무를 맡은 가운데 앞으로는 업무 범위가 주주권 행사로 확대된다. 민감한 사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회의 자료도 이들이 작성한다. 전문성은 차치하더라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책임투자팀 규모를 30명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주주권 행사를 책임질 전문가 20명 이상을 물색해 채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국민연금은 올 상반기 36명의 운용역을 뽑기로 하고 선발 절차를 밟았지만 전북 전주 이전 등으로 지원자가 적어 20명을 뽑는 데 만족해야 했다.

제대로 주주권을 행사하기에는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연금은 국내 기업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자문을 맡기고 있다. 500여 개 상장사에 대한 의결권 자문을 맡기면서 내는 수수료는 1년에 약 8000만원에 불과하다. 연구원 한 명 인건비도 안 되는 돈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인프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추진하다 보니 국민연금이 엉뚱하게 주주권을 행사해 ‘선무당이 사람 잡는’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