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입한 펀드가 채권에 투자했는데, 이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부도를 낸다면 펀드는 손실을 어떻게 처리할까. 최근 부도 위기를 맞은 중국 차이나에너지리저브&케미컬그룹(CERCG) 자회사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담은 일부 단기채 펀드가 부실자산을 처리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빠르게 펀드 환매를 재개할 수 있는 상각 방식을 택했지만 일부 판매사와 투자자는 부실자산 수익률이 공평하게 배분되는 펀드분리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투자한 자산 가운데 일부가 부실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자산운용사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본시장법상 두 가지다. 부실자산 상각 방식과 펀드분리 방식이다. 부실자산 상각 방식은 펀드에 담긴 부실자산의 가치를 적어도 80% 이상 깎은 다음 투자자가 투자자산 전체를 환매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방법이다. 환매를 결정한 투자자는 상각분만큼 손실을 확정짓는다. 환매하지 않고 펀드를 들고가기를 선택한 투자자들은 운용사가 부실자산을 20% 이상 회수하면 추가 수익을, 그보다 조금 회수하면 추가 손실을 본다.

펀드분리는 정상자산과 부실자산을 담은 펀드를 각각 분리한다. 정상자산은 환매할 수 있지만 부실자산은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환매할 수 없다. 사태 해결까지는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자금이 묶인다는 단점이 있다. 대신 부실자산 처리 결과에 따른 손실은 투자자들이 똑같이 나눠 가진다.

국내에 펀드분리 방식이 처음 도입된 건 1999년 대우그룹 해체 때 부도 채권을 담은 펀드를 처리하면서다. 이후 2003년 옛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시기 많은 펀드에서 대규모 부실자산이 발생했을 때 주로 활용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환매 여부도 투자 판단의 일부로 보고 상각 방식을 택하는 사례가 많다”며 “펀드를 분리한 뒤 자산운용사들이 실패를 감추기 위해 정상자산 펀드 수익률만 공개하는 등 부작용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