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적정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이 줄곧 문제를 제기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2015년 회계처리 변경뿐만 아니라 2015년 이전 회계처리도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증선위가 금감원이 제출한 조치안만으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적 분식을 입증하기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증선위의 입장 변화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제재 수위에 어떤 영향을 줄지 판단하긴 아직 이르지만, 금감원이 주장한 ‘고의적 분식'이 아니라 ‘과실' 또는 ‘중과실'과 같은 제3의 결론이 날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바 2015년 前 회계도 적정성 따져보겠다"
◆“금감원 조치안 논리 부족”

금융위원회는 “증선위가 지난 7일과 12일 두 차례 회의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조치안에 대해 논의한 결과 2015년 이전 기간 회계처리의 적정성 여부도 함께 검토해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13일 발표했다.

금감원은 조치안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며 대규모 순이익을 낸 것이 ‘고의적 분식’이라고 지적했다. 회계전문심의기구인 감리위원회에서도 2015년 회계처리 변경이 적정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그러나 증선위원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설립 초기인 2012년부터 2014년까지 회계처리가 옳았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2015년 회계 변경이 적정했는지, 미국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 공시를 누락한 것이 위반인지 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의견은 증선위(총 5명) 민간위원 3명 중 일부가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증선위가 금감원 조치안에 없는 현안도 검토 대상에 포함하기로 함에 따라 금감원은 일단 타격을 입게 됐다. 한 회계 전문가는 “증선위는 통상 감독원 조치안을 토대로 제재 수위를 결정해왔기 때문에 증선위에서 이 같은 의견이 나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사실상 금감원의 논리가 미흡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삼바에 유불리 판단하긴 일러

이에 따라 오는 20일로 예정된 3차 증선위에선 그동안 논의되지 않았던 새로운 쟁점에 대한 공방이 이뤄질 전망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2년 회계처리 정당성부터 소명해야 한다. 설립 초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로 인식해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한 것에 대한 당위성을 입증해야 한다. 증선위가 금감원 조치안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만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금감원 논리의 허점을 파고들 여지가 생긴 셈이다.

금감원도 전열을 정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위반을 입증할 근거 자료를 증선위에 제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 조치안에는 2015년 회계처리 변경만 문제 삼았지만, 금감원 내부에선 2012년 설립 때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로 인식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가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선위의 원점 재검토 방침이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그러나 금감원이 주장한 ‘고의적 분식'이 아닌 다른 결론이 날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 측이 방어해야 하는 범위가 확대됐고 금감원도 회사 설립 초기부터 회계처리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던 만큼 아직 결론을 가늠하긴 어렵다”면서도 “증선위가 금감원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과실' 또는 ‘중과실'과 같은 제3의 결론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