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를 맞은 중국 에너지 기업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담은 단기채 펀드들이 31일 환매와 가입 신청을 재개하면서 기존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금 펀드에서 돈을 빼면 손실을 확정짓지만 ABCP가 성공적으로 상환됐을 때 수익을 얻을 수 없고, 반대로 펀드에 남아 있으면 ABCP가 상환됐을 때 수익을 회복할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 손실이 더 커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ABCP에 투자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채권단은 오는 4일 ABCP 발행사의 모기업인 차이나에너지리저브&케미컬그룹(CERCG) 관계자들을 만나 부실자산 회수를 논의할 예정이다.
고민 깊어지는 'KTB전단채 펀드' 투자자들
◆손실 입은 단기채펀드 환매 재개

KTB자산운용은 지난 29, 30일 이틀 동안 중단했던 ‘KTB 전단채’ 펀드 환매와 추가 설정을 이날 다시 시작했다.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의 ‘골든브릿지 으뜸단기’는 1일 환매를 재개한다. 한 대형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는 “법인을 중심으로 환매 요청이 꽤 들어왔다”며 “안정적인 채권형 상품으로 생각하고 거액을 넣은 투자자들이 환매를 할지, 기다려보는 게 나을지 물어보는 상담 전화도 여러 통 왔다”고 말했다.

‘KTB 전단채’ 펀드는 중국 CERCG 자회사인 CERCG캐피털이 발행한 1억5000만달러 규모의 사모 달러채를 기초자산으로 국내 증권사가 발행한 ABCP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CERCG의 다른 자회사인 CERCG오버시즈캐피털이 지난 28일 3억5000만달러 규모 달러표시 채권의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서 KTB자산운용 펀드가 투자한 ABCP 등급도 상환 가능성이 불투명한 부실 자산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KTB자산운용은 지난 29일부터 투자자 형평성을 위해 환매를 막고 ABCP 투자금의 80%를 손실 처리했다. 이에 따라 이 펀드의 수익률은 하루 만에 3.88% 떨어졌다.

◆펀드 유지해도 수익률은 ‘복불복’

고민 깊어지는 'KTB전단채 펀드' 투자자들
환매를 결심한 투자자들은 기존 수익률에서 상각으로 인한 손실분만큼을 뺀 수준에서 손익을 확정짓는다. 이 경우 채권단이 협의를 통해 투자 자산을 20% 이상 돌려받아도 수익을 회복할 수 없다. 반대로 채권단이 자산을 20%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추가 손실은 없다.

환매하지 않기로 한 투자자들은 채권단이 자산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느냐에 따라 수익이 크게 갈린다. 만약 ABCP 투자금의 20% 이상을 돌려받는다면 지금보다 수익률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반대 경우엔 추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환매 금액이 많을수록 남아있는 투자자들의 이익과 손실폭은 커진다. 이미 빠져나간 투자자들과 수익과 손실을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KTB자산운용 관계자는 “앞으로 부실자산 발행자와 법정 분쟁이 생기고, 여기서 채권단이 승소한다면 받은 배상금도 그 시점에 펀드에 남아있는 고객들만 가져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실자산 회수 가능성은 4일 채권단이 ABCP 발행사의 모기업인 CERCG와 면담한 뒤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