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업의 불법·편법 상속, 일감몰아주기, 일자리 창출, 공정 거래 여부 등 사회적 이슈를 평가해 투자를 결정하거나 투자 기업 관리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중점관리대상(포커스리스트)으로 선정하고, 의결권 행사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주주총회 이전에 찬반 여부 등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책임투자를 강화하고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해 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가 600조원을 넘어선 국민의 노후자금을 활용해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가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연금 사회주의' 논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필요”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1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책임투자·스튜어드십 코드 연구용역’에 대한 중간 보고를 받았다. 국민연금은 지난 7월 박경서 교수(경영학과)가 이끄는 고려대 산학협력단을 연구용역 수행 기관으로 선정했다.

연구팀은 책임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불법·편법 상속 △일감몰아주기 등 최근 사회적 이슈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ESG 평가 모형’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투자 대상을 결정하거나 이미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관여할 때 ESG 평가 결과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제 기업’에 사외이사·감사 추천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맡아 운용하는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명기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도입할 전망이다. 연구팀은 이를 위한 수탁자 책임 이행 방안도 제시했다.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를 규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공개하고,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중점관리대상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연구팀은 관리 대상 기업에 공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앞서 대면 회의나 서신 교환을 통해 설득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상당한 주주 가치 훼손 우려가 있는 회사는 공개서한을 발송하거나 사외이사·감사 후보를 추천하는 등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사회를 상대로 한 주주대표 소송이나 행동주의 펀드 활용 등도 주주권 행사 방안으로 제시했다.

의결권 행사 방향을 주주총회 이전에 공시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국민은행의 노조 추천 이사 선임 등 민감한 주총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견을 개인투자자나 다른 기관투자가들이 미리 알 수 있도록 해 의결권 행사 실효성을 높인다는 뜻이다.

◆“독립성 담보 없으면 주주권 강화 위험”

재계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면 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막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국민연금은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127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는 삼성전자(9.71%) SK하이닉스(10.37%) 현대자동차(8.12%) 등 278개다.

연구팀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사용자와 근로자 단체가 추천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탁책임자 위원회’를 구성해 견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구팀을 이끈 박 교수는 “이 같은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주권을 강화하는 것에는 나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기금운용의 지배구조를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